• 조선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검증청문회가 밝혀내야 할 것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3일 뒤(19일)면 한나라당의 후보검증청문회가 열리고 경선 투표는 그로부터 한 달이다. 지금까지가 언론 등 매체를 통한 공방이었다면 청문회는 국민을 직접 상대하는 장(場)이 될 것이다. 이 마당이 단순히 경선의 한 과정이란 생각에서 성의 없이 형식적인 절차로 치러진다면 국민은 한나라당의 ‘경선 흥행’에 흥미를 잃게 될 것이다. 이 청문회에서 각 후보가 정책면에서, 이념 면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관점을 국민 앞에 부각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는 경선에서 이길 수 없고 설혹 이긴다 해도 본선에서 호된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남은 한 달이 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정신과 자세를 지닌 자가 이길 것이다.

    이 검증청문회에서 지금까지 경선 과정에서 제기됐던 여러 의혹과 지적에 대한 구체적이고 솔직한 설명이나 해명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의 유권자들이 유달리 민감한 것은 부(富)와 권력의 문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과 그의 직계 가족이 돈이 너무 많으면 그것만으로도 거부감을 느낀다. 게다가 그 형성 과정이 불투명하면 가차없이 고개를 돌린다. 권력을 남용하거나 권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위세를 떠는 것도 못 참는다. 권력자의 가족에게도 ‘무임 승차’를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낸다.

    역대 선거를 살펴보면 결국 돈으로 인한 도덕적 타락과 권력에 기인하는 부정부패가 후보들의 당락을 갈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 후보와 관련된 쟁점의 중심은 재산에 관한 것이고, 박 후보의 경우는 아버지(朴正熙)시대의 권력의 유산(遺産)문제가 논란거리인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들에 관한 투명하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제시되지 않는 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또 상대방과 관련된 의혹의 문제들을 어느 정도 섭렵했으면 공방의 중심을 정책 쪽으로 옮겨갔으면 한다. 이제부터는 안보문제, 고용의 문제, 나라 재정의 문제, 대북·대미문제, 교육·보험·연금 등의 문제들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문제를 떠나서 우리 유권자, 특히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알고 싶은 것들이 있다. 경선 결과 당의 후보로 선정되지 못했을 경우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승복에 그치지 않고 당의 승리를 위해 어떻게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인가다. 즉 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 같은 직책을 맡을 것인가에 답해야 한다. 또 자신의 캠프에서 일했던 참모들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당의 대선전(大選戰)에 투입할 것인가도 알고 싶다.

    당의 후보가 된다면 이제까지 경쟁자 쪽에 종사했던 사람들, 특히 자신을 향해 온갖 ‘못된 소리’를 다 외쳐댔던 사람들과 핵심 인사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도 말해야 한다. 단지 선거전에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정부 구성과 집권 세력의 조직에 얼마나 기용할 것인가도 관심거리다. 더 나아가 대선전에서 돌발할 수 있는 여러 비상적 상황에 대처해 당의 후보에 집착하지 않을 용기가 있는지도 개인적으로 묻고 싶다.

    이런 질문은 단순히 정치 도의(道義)의 차원에서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당이 경선 결과로 분열되어 비록 후보는 정했으되 본선에서 지리멸렬한 상황으로 이끌려갈 비상 사태에 대처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당의 결정에 승복하는 소극적 자세에 머물지 않고 당의 승리를 위해 대승적으로 단합하고 화해하는 정신을 보여주는가가 관건이다.

    이런 점도 주문하고 싶다. 각 후보와 참모진은 공방은 치열하게 하되 용어의 선택과 표현의 방식에 신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각 참모 진영에서 쏟아져나 오는 표현들은 ‘야합’ ‘공작’ 등 다시 주워담기 어려운 막말인 경우가 있다. 난삽한 단어들이 상대방을 자극하며 감정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은 경선 후 승자측이 패자측의 협조와 지원을 받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자해적이다. 언어와 용어를 품위 있고 절도 있게 끌고 가도록 참모들을 통제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청문회가 대선과 한나라당과 이 나라의 갈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