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정치부 차장이 쓴 '이명박은 손학규, 박근혜는 친노 응원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에선 ‘맞춤형 후보’ 얘기가 돌아다닌다. 종류도 여러 가지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주 라디오 프로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이명박이면 범여권 후보는 손학규, 박근혜면 이해찬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정형근 의원은 지난 5월 “이 후보에 대해선 진대제 전 통신부 장관, 박 후보엔 한명숙 전 총리가 대항마로 나올 것”이라고 했다. 전여옥 의원도 “박 후보엔 한 전 총리”라는 데 의견이 같지만 “이 후보엔 김혁규 전 경남지사일 것”이라고 했다.

    박 후보에 대해선 유신(維新) 투쟁 경력이 있는 이 전 총리나 한 전 총리, 이 후보엔 경제에 대한 식견이 있는 손 전 지사, 진 전 장관, 김 전 지사 등으로 맞불을 놓는다는 예상이다. 각 후보의 살아온 길과 특징에 따른 나름대로 그럴 듯한 대진표들이다. 그러나 ‘맞춤형 후보’를 ‘과학적’으로 고르자면 역시 지지율 조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 26일 한국리서치, 6월 9일 한국갤럽 등 두 차례 조사에서 여야 주요 후보들 간의 가상 대결을 붙여 본 적이 있다. 이명박 후보는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한명숙 등 네 여권 후보를 상대로 모두 40%포인트 이상 격차로 이긴다는 결과가 나왔다. 박근혜 후보도 정, 이, 한 세 후보에 대해선 40%포인트 이상 승리였다. 박 후보에 이 전 총리, 한 전 총리가 ‘맞춤형 후보’라는 분석은 현재 지지율 조사에선 맞지 않는다.

    그러나 유일하게 ‘박근혜 대 손학규’ 대진표에서만 5월 조사선 ‘57%대 38%’, 6월 조사선 ‘56%대 35%’라는 상대적으로 근접전이 이뤄졌다. 코리아리서치의 7월 1일 조사도 ‘55%대 34%’로 비슷한 결과였다. 20%포인트도 큰 차이지만 바람 불기 따라서 극복이 가능한 격차다.

    왜 그런지 내용을 들여다봤다.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 가량인 화이트 칼라 집단에서 손 전 지사가 박 후보를 앞서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박 후보가 정, 이, 한 등 다른 주자와 대결할 때는 화이트 칼라들이 ‘60%대 30%’로 박 후보 손을 들어준 것과 대조를 이뤘다.

    ‘박근혜 대 손학규’ 대진표는 한나라당 경선과 범여권의 후보 선출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우선 한나라당에서 이 후보가 승세를 굳힐 경우 범여권의 어떤 후보도 자력으로 승리하기 힘들다. 네거티브 한 방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같은 조건이라면 원래 ‘내 식구’인 여권 출신 주자에게 마음이 기울 것이다. 반면 박 후보가 역전하는 구도가 되면 박 후보에 대해 유일하게 경쟁력이 있는 손 전 지사가 힘을 받게 될 것이다.

    역으로 범여권 주자 중 누가 상승세를 타느냐도 한나라당 경선에 영향을 주게 된다. 손 전 지사가 선두를 계속 유지하면서 범여 후보로 굳어지면 한나라 지지자들은 박 후보를 내세우는 데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손 전 지사가 범여 내 비토 정서를 뚫지 못하고 가라앉으면 나머지 주자에 대해선 이, 박 후보가 비슷한 경쟁력을 갖는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한 방’에 대해 염려 안 해도 되는 박 후보를 더 안전한 카드로 여길 수 있다.

    박 후보가 친노(親盧) 주자들의 상승세를 반길 이유는 또 있다. 현재 이명박 후보 지지율 속엔 수도권, 호남의 범여 성향 유권자들이 제법 포함돼 있다. 범여 후보 쟁탈전이 달아오르면서 현재 1~2%에 머물고 있는 친노 주자 지지율이 본 궤도에 오르면 이 후보 지지율은 현재보다 빠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이명박은 손학규의 선전(善戰)을 바라고, 손학규는 박근혜의 역전극을 기대하고, 박근혜는 친노 주자들이 빨리 치고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물고 물리는 관계가 된다. 이제는 여야로 갈라 섰지만 ‘한나라 빅3’ 사이의 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