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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정치부 차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 경선이 8월 18일 또는 19일에 열릴 전망이다. 한나라당 당헌(黨憲)이 경선을 대선 120일 전(8월 21일)까지 치르도록 한 데다, 경선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토, 일요일날 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12월 19일 대선보다 꼭 넉 달 전이다.
경선 선거인단은 23만1600명으로 구성된다. 한나라당 당원과 대의원이 11만5800명, 일반 국민 선거인단이 6만9480명이다. 수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할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인단 4만6320명으로 환산돼 반영된다.
이번 경선에서 당원, 대의원의 투표율은 9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일반 국민 투표율은 50%를 넘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예상대로라면 8월 경선엔 한나라당 당원, 대의원이 10만명, 일반 국민은 3만명 가량이 참여하게 된다. 한나라당 당원, 대의원 10만명이 경선결과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밖에 없다.
경선은 대선에 내보낼 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예선전이다. 그러나 올해 한나라당 경선은 여느 예선전이 아니다. 현재 국민 지지율 40%대인 1위 후보와 지지율 20%대의 2위 후보가 맞붙기 때문이다.
현재 범(汎)여권에선 한나라당서 3위였던 주자가 5%대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런 범여권 전력(戰力)으론 한나라 1·2위 주자 중에서 나올 후보를 상대하기가 대단히 버겁다. 실제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중 누가 한나라당 후보가 돼도 범여권 단일 후보에게 20~40% 포인트 득표율 차로 압승한다는 가상대결 결과가 나오고 있다. 8월 한나라당 경선은 실질적인 결승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12월 대선에서 대역전극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 경선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범여권 후보가 자기 힘만으로 한나라 후보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다. 한나라당 후보가 자멸해 줘야 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한나라당 당원들이 경선에서 옥석(玉石)을 잘못 가렸다는 얘기가 된다.
오는 12월 대선 때 투표권을 갖는 유권자가 3700만명이다. 대선 투표율을 70%로 가정하면 투표장에 나올 유권자는 2600만명 정도가 된다. 정상적인 정치상황이라면 이들 2600만명이 국민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후보 두 명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는 대선보다 4개월 전 한나라당 경선에서 한나라당 당원 10만명이 그 선택을 대신하게 된다. 당원 한 명이 일반 유권자 260명의 선택권을 앞서 행사하는 셈이다.
한나라당 당원들이 대한민국 대통령감을 먼저 고르는 ‘특권’을 누리게 된 이유는 뭘까. 10년 좌파(左派)집권을 종식시킬 때가 됐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한나라당 지지 쏠림 현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1987년 대선 때도 있었다. 김영삼, 김대중 두 민주화 운동 지도자에게 군부정권을 끝장내 달라는 국민 지지 60%가 몰렸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두 지도자는 후보 단일화에 실패함으로써 역사에 죄를 지었다.
이번 대선에서 이 전 시장, 박 전 대표가 양 김(金)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두 주자는 이르면 이달 중 당 경선후보로 등록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선거법에 따라 독자출마의 길은 막힌다.
대신 책임은 한나라당 10만 당원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들이 일반 유권자 수백 명 몫의 선택권을 행사하는 만큼, 대한민국의 ‘앞으로 5년’에 대한 책임도 수백 배 더 무겁게 져야 한다. 한나라당 10만 당원은 8월 경선에서 대한민국을 제 궤도로 돌려놓을 후보를 골라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12월 대선 때 한 표를 행사할 2600만 유권자에게,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 된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