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0일 사설 '한나라당, 경선 룰 분쟁과 지켜야할 5대 원칙'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의 대선 주자간 경선 룰 분쟁이 9일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 제시에도 불구하고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여론조사 반영과 관련하여 일반국민 투표율 67%를 보장한다는 등의 강 대표 중재안에 대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수용 의사를 밝히고 경선출마를 공식화하는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거부의 뜻을 밝히고 있다. 경선 룰을 둘러싼 내분이 이처럼 양극화하자 분당으로 치달을 개연성이 점점 짙어진다는 것이 한나라당 안팎의 일반적 시각이다.

    한나라당이 경선 룰, 곧 절차 민주주의의 기본에서조차 화합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은 정당 민주주의를 위한 결격사유에 해당할 것이다. 우리는 한나라당의 내분이 당 자체의 존폐 논란에 이어질 심각한 분기점이면서 동시에 한국의 정당 민주주의 그 발전과 퇴보를 가를 중대한 분수령이라고 본다. 한나라당이 다음 원칙으로 되돌아서기를 기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첫째, 이성을 되찾아 민주적 토론으로 경선 룰 내분을 풀어나가야 한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진영이 경선 룰에 따른 이해득실 계산에 사로잡혀 각자 도생(圖生)하려 한다면 그것은 민주 정당의 구성원이 견지해야 할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정당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결사체지만 권력 만능주의나 승리 지상주의에 함몰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채로는 국민적 정치적 의사를 결집시킬 능력 자체가 원천적으로 의심받을 것이다. 강 대표도 그렇다. 우리는 강 대표에 대해 좌고우면하지 말고 사심없는 중재안 마련에 당운을 걸라고 주문해온 만큼 “더 이상 협상은 없다”는 식으로 자르는 것은 독선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강 대표는 한나라당이 차분한 이성으로 조직과 활동의 민주성을 다져나가도록 정치력을 발휘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둘째,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도 사심을 버리고 내분을 수습해나가야 한다. 내분의 근원은 두 주자 모두 ‘나 아니면 안된다’는 독선임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기 전에 당원과 지지층을 향해 ‘여유의 정치, 여유로운 리더십’을 실증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상대측에 감정적 대응을 삼가고 정제된 언어를 통해 자신과 자파의 주장을 펴나가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덕목이다. 사생결단하듯 하는 반목·대립은 반(反)민주성의 적나라한 표현이다.

    셋째, 당내 원로와 중립적 인사들은 경선 룰 내분을 보다 적극적·전향적으로 중재하기 바란다. 이럴 때일수록 원로·중립 인사들이 나서 조정과 타협을 이끌어내는 풍토가 정착돼야만 민주 정당의 토대가 보다 굳건해 질 것이다. 경선 룰에 관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최고위원회, 상임 전국위원회 및 전국위원회 등의 순차적 세대결로 결판지을 수밖에 없게 되면 그 과정의 극심한 반목과 추태가 바로 ‘분당의 이정표’일 것이다. 그런 이정표가 자멸에의 초대장임은 정치사가 증언하고 있다.

    넷째, 이상의 원칙을 통해 경선 룰 내분을 가급적 조기에 수습해야 한다. 당원과 지지층은 4·25 재·보선 민심이 이미 짚어줬듯이 두 주자간 반목과 대결에 식상할대로 식상해 있다. 경선 룰이라는 초보적 의제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은 원내 제1당으로서도 합당한 자세일 수 없다. 그렇지않아도 열린우리당 또한 분당과 해체 위기로 내달아 지금 이 나라에는 정치의 리더십이 실종된 지 오래다. 한나라당이 수권정당임을 자임할 수 있으려면 내분을 조기에 매듭해 정국을 추스를 책임부터 돌아봐야 한다. 노 정권의 임기말 국정 감시를 위해서도 그 책임은 무겁다.

    다섯째,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하루빨리 정책 대결로 대전환하기 바란다. 차기 정권을 책임지겠다는 주자들이라면 국가경영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당원과 국민의 심판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한나라당이 이 5대 원칙에 따라 질서 있는 내부 토론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원만한 수습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1980년대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지도자의 분열·대립이 민주화를 지연시켜온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사실(史實)을 한나라당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간의 반목 또한 그렇게 변질되면 그 자체가 ‘대선 3연패(連敗) 시나리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