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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에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이 쓴 시론 <누굴 위한 ‘반FTA 단식’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시한을 눈앞에 두고 한미 양국 대표단은 ‘끝장 협상’을 진행하고 있고, 국회의사당에서는 천정배, 김근태 두 정치인이 ‘협상을 끝장내라’면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자 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두 사람이 그동안 무엇 하다가 이제 와서 곡기를 끊는다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해야 하는지는 석연치 않다.
“일부 단체들이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정부가 마련한 절차와 과정을 외면하고 한미 FTA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은 우리의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5월 법무장관이던 천정배 의원이 포함된 정부 5개 부처 장관 공동 명의 담화문의 내용이다. 지난해 9월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김근태 의원은 “지금은 지지나 반대 입장을 밝힐 단계가 아니며, 그것은 협상 결과를 보고 난 뒤에 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여당의 최고위층으로서 또 정부의 장관으로서 한미FTA 추진에 대해 공동 책임 의식을 느껴야 마땅한 이들이 반FTA로 입장을 선명하게 선회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대선 경쟁에 나선 이들의 단식 농성이라는 정치적 선택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들이 FTA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아직 협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미 FTA가 체결된다면 서민과 중산층의 삶에 큰 고통을 주게 될 것”, “한미 FTA 협상의 결과는 참상이고 재앙” 등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말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가. 이들의 말에서 미래를 열어가려는 이 나라의 진보세력의 중추를 자임하는 정치 지도자다운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투자자-국가중재제도(ISD)’는 미국의 투자자는 물론이고 투기꾼에게까지 입법, 사법, 행정 전반에 걸쳐 국권을 내줄 위험이 있다. 정부의 공공정책권이 심각하게 제약당해 서민을 위한 양극화 해소나 복지정책 등도 우리 정부의 뜻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천정배 의원의 말은 그가 법무장관을 지낸 인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귀를 의심하게 한다. 제대로 된 율사라면 ‘투자자-국가중재제도’가 공공성을 저해하면서까지 투기꾼의 부당한 이익을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불투명하고 자의적인 규제 남발로 외국인 투자를 경쟁 상대국인 중국에 내주어 투자를 위축시키고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여 민생을 위태롭게 하는 게 작금의 한국 상황이다. 민생정치모임을 이끄는 정치 지도자라면 이 같은 후진적인 한국의 정책 환경을 선진화하기 위해 ‘투자자-국가중재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마땅하다.
선거를 의식하고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표 계산일 것이다. 이들은 FTA를 중단하라고 해서 현 정부와 자신들을 차별화시키려는 계산을 하는 것이지만 더 많은 유권자들이 공감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인적자원만 빼곤 모든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에까지 온 것은 세계 경제와 연결된 고리를 현명하게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민생을 걱정하는 지도자라면 고개를 바깥으로 돌려 정치체제를 불문하고 전 세계가 경제성장 경쟁을 벌이는 상황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한미 FTA는 통상국가인 한국의 지속적인 성장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만약 한미 FTA가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 내용으로 타결되었다면 국회 비준 동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