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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가 쓴 칼럼, "'손학규 효과'와 중도정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민세 안재홍. 일제하 중농 출신의 지식인이자 중도정치의 수장 안재홍을 새삼 떠올리는 것은 대선 주자의 한 사람인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 때문이다. 손학규가 안재홍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의 탈당이 꽉 막힌 듯이 보였던 한국의 정당 구도에 중도정치의 물꼬를 터주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탈당을 감행한 당사자는 '이인제 악몽'과 도덕성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터지만, '자신을 버렸다'는 고백의 진정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수십 년 전 뿌려졌던 중도정치의 씨앗에 모종의 새싹이 움틀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한국에서 중도정치는 기회주의자의 은신처였거나 재기를 위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잠시 숨기는 대피소였다. 마치 선명성의 칼날이 부딪는 좌파와 우파의 투쟁전선으로 다시 파병될 부상병을 치료하는 야전병원의 막사 같은 존재였다. 그만큼 한국의 정치풍토가 정치색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사람에게만 우호적이었기 때문인데, 현 정권에서 좌.우파의 대립이 극단적 형태로 몰려갔던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진보를 자처한 급진파의 통치 양식에 실망감이 증폭했다고 해서 다시 시계추가 무작정 우파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중간 지대의 부재 탓이다. 손학규가 오랜 친구인 김지하의 목수론(木手論)처럼 집주인 욕심을 버리고 여과기능을 담당할 누옥이라도 짓는다면 '자신을 버렸다'는 백의종군의 화두를 그저 변명으로 치부할 일만은 아니다.
진한 색깔을 요하는 한국에서 중도정치는 설 땅이 없었다. 지금도 여전해서 열린우리당 탈당파가 중도통합을 외쳐도 정상배(政商輩)의 술수 정도로 간주되기 일쑤다. 여간해서 정체성을 만들기도 어렵고 유권자에게 호소하기도 난감하다. 탈당하기 이전 쏘아댔던 독화살을 기억하면 그럴 법도 하다. 그런데 좌.우파가 애용했던 개념인 통합.상생.화합은 실은 중도파의 최대 강령이었던 만큼 이제는 그것을 돌려줄 원주인이 나타날 때도 되었다.
양극을 잇대려는 중도파의 노력은 난세일수록 강렬했다. 일제 치하 이상재.신석우.안재홍 등이 대표적 인물이었고, 이들이 주도한 신간회는 좌.우파의 연합정당이었다. 광복 이후에는 조봉암.조소앙.김규식 등이 중도정치의 터전을 닦았다. 안재홍은 좌우를 아우르는 중도파의 대부였다. 1920년대 중후반 비타협적 정치운동을 외치는 사회주의와 실력 양성론을 내세운 우파민족주의를 최초의 연합전선인 신간회로 수렴시킨 정치가는 다름 아닌 안재홍이었다. 누가 공산주의 이론가 박헌영과 김단야를 주저앉히고,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수장인 김성수와 송진우의 기세를 꺾을 수 있을까. 그가 쓴 사설 900여 편, 시평 400여 편은 두 개의 강줄기가 만나는 합수(合水)머리였다. 30년대 초반 신간회가 와해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요즘 말로 '차이의 정치'라고 할 정치철학을 설파하기도 했다. "자기들의 처지 정견을 솔직하게 발표하고, 각 선을 정리 청산해서 새로운 재협동의 단계로 진출해야 한다"는 협력정치의 논리는 좌.우파 간 불신과 배척으로 몰려가는 오늘날의 정치에 더욱 유효하다.
극단의 시대에 그의 중도정치는 대체로 실패했다. 그러나 지금은 극단을 경계해야 하는 시대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정통성 시비는 과거지향적이고, 수월성과 기회 균등 논리가 지금처럼 대치하면 미래 한국을 지탱할 교육 인프라가 망가진다. 좌우의 어느 한 극단이 젊은 세대의 문화적 역동성을 담아낼 수나 있는가. 안재홍이 주창했듯 '조선에서 출발해서 세계를 두루 돌아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는' 새로운 자각, 즉 세계와 민족의 병재성(竝在性)과 회통성(會通性)에 주목하는 그의 민세주의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협 논리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 20년, 한국의 정치는 극단의 시대를 돌아볼 때가 되었다. 그곳에 중도정치의 명분이 자라고 있었고, 무엇보다 좌.우파 투쟁에 신물이 난 국민의 일그러진 표정이 있다. 이런 때 손학규의 탈당은 개인으로선 위험천만한 모험이지만 중간지대의 형성을 기대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보수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가 대권 욕심을 버리고, 중도정치의 지평을 넓히는 데 헌신한다면 '만민공생과 공영국가'를 원리로 좌우 균형을 기하는 성공한 안재홍이 나오고, 성공한 중도정치가 꽃 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