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 '분수대'에 이 신문 김진국 논설위원이 쓴 '참새와 봉황'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참새는 어느 논밭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허수아비의 친구였다. 참새를 소재로 한 속담도 많고, 포장마차 안주로 참새구이가 최고 인기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 참새의 암수를 구분하는 손쉬운 방법은 가슴 털. 수컷에게는 조금 시커먼 털이 있다. 이 검은 털이 많을수록 무리 속에서 지위가 높다. 대개 나이도 많고 힘도 세다.

    워싱턴대학의 시버트 로워 교수는 지위가 낮은 수컷 가슴에 검은 칠을 한 뒤 돌려보냈다. 다른 참새들이 가슴의 털을 보고는 겁을 내며 슬슬 피했다. 덕분에 그 참새는 마음대로 먹이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 다른 수컷들이 그 참새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결국 별 볼일 없다는 걸 알아채고는 쪼아죽이고 말았다. (최재천, '인간과 동물')

    어치는 머리털을 세우는 각도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진다. 가장 힘센 어치는 90도 정도 세워 덤빌 테면 덤비라는 자세를 보인다. 힘이 없는 놈이 겁없이 머리털을 세우다가는 혼쭐이 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참새가 검은 털을 달고, 어치가 머리털을 세우는 것과 같다. 그런데 요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그게 아니다. 주요 국가 현안에 대해서도 엉거주춤 양다리다. 머리털을 세운 것도 눕힌 것도 아니다. 잘못 덤벼 쪼이기는 싫으면서 먹을 건 많이 챙기겠다는 욕심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지지하던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도 농축산물 개방을 슬쩍 걸고 넘어진다.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어정쩡하다. 이 바람에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한.미 FTA를 해야 한다고 똑똑히 얘기한 적이 있느냐"고 꼬집었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더하다. 졸속협상이라며 "다음 정부로 넘기라"고 한다. 왜 졸속인지, 어느 조항이 불리하고,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한다는 건지 말이 없다. 다음 정부에 가면 왜 좋아지는 건지도 설명이 없다. 의견이 있어야 유권자가 선택하고, 다음 정부에서 벌어질 일도 예측할 것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인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꾸짖을 만한 상황이다.

    연기론은 가장 비겁하다. 책임은 안 지면서 찬성표와 반대표를 다 먹어 보겠다는 심보다. 교육 세금 연금 등 국가 대사에는 모두 그 모양이다. 가짜 검은 털을 붙인 참새들이 봉황을 자처하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