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2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농업인들 앞에서 작심한 듯 쓴소리를 했다. 그는 "농업도 상품이며 시장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품 경쟁력이 없다면 농사짓기 어려워질 것"이라고도 했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다. 농업은 워낙 민감해 역대 어느 대통령도 정면으로 문제 삼는 일을 삼갔다. 그러는 사이 개방의 파고가 닥쳐오고 경쟁력은 떨어졌는데, 노 대통령이 농업의 현주소를 솔직하게 밝힌 것이다. 용기 있는 행동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소신도 흔들림 없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노 대통령은 "한.미 FTA는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고 특단의 의지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보적 정치인들이 FTA 하면 광우병 소가 들어온다는 식으로 정직하지 않은 투쟁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누가 다음 정권을 잡더라도 한.미 FTA는 안 할 것 같아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실제로 한.미 FTA는 엄청난 반발을 각오하지 않는 한 손대기 힘든 과제다.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이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노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을 긍정한다. 지금은 고통스럽겠지만, 결국 노 대통령은 한.미 FTA를 성사시킨 용기 있는 대통령으로 후세에 기억될 것이다.

    비단 한.미 FTA 때문이 아니더라도 농업은 개혁이 시급한 분야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의 비중은 2005년 2.9%까지 떨어졌다. 반면 농업 분야 재정투자는 계속 늘었다. 농업 GDP의 42%를 재정투자로 메우는데도, 국민은 국제시세보다 비싼 농산물을 먹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고도 농민이 농정을 불신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농업을 예외로 인정해 보호하던 시절은 지났다. 설령 우리가 그러고 싶어도 전 세계가 봐주지 않는다. 흔히 농민운동가들이 '식량 안보'를 내세우지만, 기름.전기.자동차도 농산물 못지않게 생활과 직결된 중요한 상품이다. 오이.백합 등 국산 농산물이 일본 수입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산과 품질은 비슷하고 가격은 20% 싸다니 당연한 결과다. 이쯤 되면 누가 보호해 줄 필요도 없이 시장에서 스스로 보호받게 돼 있다. 이게 바로 우리 농업이 갈 길이다. 우리도 미국의 선키스트 같은 일류 브랜드를 만들지 말란 법이 없다. 이를 위해 영농 규모가 큰 전업농과 고품질 농산물을 개발하는 신지식 농업인을 육성해야 한다.

    농민과 농민단체는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드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더 이상 구조조정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실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도 인정해야할 것이다. 정부도 시장 원리에 입각해 농촌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기 바란다. 빚 탕감처럼 시장 원리를 외면한 농정이 실패한다는 점은 익히 경험한 대로다. 노 대통령의 소신과 결단을 지지하며, 여야 정치인도 정파를 떠나 한.미 FTA를 타결하고 우리 농업이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