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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이 신문 강효상 산업부장이 쓴 '상대주의를 배웠다는 대통령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저는 고시 합격을 위해 유신헌법을 공부했습니다. 한때 이 일을 부끄럽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유신헌법 책을 쓴 학자들도 민주주의의 원리에 관하여는 소상하게 써놓아서 민주주의를 받치고 있는 상대주의 철학을 접할 수는 있는 기회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일생 동안 저의 생각을 지배하는 철학이 됐습니다. 저는 이것을 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7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란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하지만 상대주의(相對主義)가 노 대통령의 지배적인 철학이자 생각이라는 고백(告白)을 접한 상당수 사람들의 심정은 착잡함을 넘어 당혹스럽기까지 한 것 같다.
유신 당시 유신헌법을 해설한 학자는 한태연, 갈봉근 교수 등이 있지만, 노 대통령이 정확히 누가 쓴 무슨 법학 교과서를 읽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법철학이나 법사상사 서적에 나오는 대표적인 상대주의는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1878~1949)가 주창한 철학이다. 위대한 형법학자이자 반(反)나치 사상가인 라드부르흐의 상대주의는 한마디로 누구든 각자의 세계관이 다른 만큼 ‘절대’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입장이든 상대적인 가치만 가질 뿐이므로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관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글에서 굳이 상대주의를 언급한 이유는 아마도 자신에 대한 좌파세력의 공격을 반박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한·미 FTA 등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교조(敎條)적인 좌파들을 향해 “너희들만 옳은 게 아니니, 현실을 직시하고 내 의견도 좀 인정하라”고 설교하려는 의도가 행간에서 읽힌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노 대통령이 표출해온 언행을 돌이켜 보면 과연 노 대통령이 상대주의를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말꼬리를 잡거나 무조건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있을 수 있는가? 그동안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기보단 모욕까지 서슴지 않은 노 대통령이 이제 와서 상대주의를 앞세우는 모순된 상황이다.
행정수도 이전 이슈만 해도 그렇다.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측의 논리는 지극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글로벌시대에 서울을 홍콩처럼 거대 도시로 발전시켜야 배후 도시들도 덩달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험적인 논리를 노 대통령은 ‘서울 기득권층의 이기적인 반발’로 묵살했다.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선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경제학적으론 아주 기초적인 논리는 ‘강남 부자들의 저항’으로 매도됐다. 이를 주장한 언론을 향해 현 정부는 온갖 저주와 모욕을 퍼부었다. 최근엔 정책적 실수를 인정하고도 언론에 대해선 한마디 사과조차 없다.
지금도 비판적인 메이저 신문들과는 인터뷰조차 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리고 있는 정부가 바로 상대주의를 지향한다는 현 정부다. 이런 척박한 현실에 상대주의가 설 땅은 없다. 오히려 나라를 둘로 찢어 놓고 장막 뒤에선 표를 계산하는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만 존재할 뿐이다.
상대주의 철학은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자신의 기반인 좌파세력이 등을 돌리고 나서야 그들에 대한 공격을 위해 상대주의를 앞세우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다. 상대주의는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하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