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이 신문 김민배 정치부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지금 희한한 ‘정치소극(笑劇)’을 구경하고 있다. 정권을 쥔 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1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또 그 대통령이 “제발 나가지 말라”고 하소연하는데도 불구하고 집권당 의원 23명이 집단 탈당하고, 대통령은 그들을 향해 “내가 돈 떨어지니까…”라고 욕을 해대는 정치코미디다.

    이 탈당사태는 대통령이 만든 집권당이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해체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됐다. 열린우리당이 ‘100년 정당’을 지향하며 민주당을 깨고 신장개업한 것이 2003년 11월이고, 오는 14일 해체를 결의하게 되니 3년4개월 만에 간판을 내리는 것이다.

    양승함 한국정치학회장이 “세계 정당사에 유례없는 일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무현’ 브랜드와 ‘열린우리당’ 명함으로는 유권자들로부터 찬물 한 그릇 얻어먹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내세울 후보가 안 보이자 상대 당 ‘후보 빼오기’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론하는 것도 ‘정동영·김근태’가 올 대선, 나아가 2008년 4월의 총선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 여당 중진이 “무능집단으로 찍혀 향후 30년간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까 두렵다”고 했을까.

    여당 의원들의 ‘야반(夜半)도주’는 그래서 시작된 것이다. 대선·총선에서 지더라도 속 시원하게 고함이라도 한번 쳐 보고 싶다는 심정에서 정치보스인 대통령과 정치모태인 당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이다.

    창당 때부터 분열과 분당의 씨앗은 있었다. 민주당을 깨고 ‘노무현당’을 급조할 때 정치적 이념이나 컬러가 비슷한 정치결사체를 만든 게 아니라 좌파에서 우파까지, 포퓰리스트에서 시장주의자까지, 386 운동권에서 산업사회를 이끈 CEO·관료 출신까지 모인 잡탕 정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정치코미디극이 의원 집단 도주극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코미디시리즈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국민과 유권자는 올 한 해 이들 ‘노무현 패밀리’와 ‘열린우리당족(族)’들이 연출하는 숱한 삼류 정치소극을 구경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자주 무대에 올려질 메뉴는 ‘대통령 때리기’일 것이다. 싸늘히 식어 버린 유권자의 마음을 되돌려놓을 카드가 없는 터에 가장 쉽게 택할 수 있는 소재는 인기 없고 레임덕에 빠져 버린 노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언행, 정책, 청와대가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또 하도 여러 번 등장해 뉴스가치를 상실한 노 대통령의 당적(黨籍)이탈을 통한 분리작업이 25일 정권 5주년 출범을 전후해 등장할 듯하다. 그다음엔 노 대통령이 힘주어 추진하려던 원포인트 개헌안 등 민심과 달리 가는 정책에 제동을 걸면서 인기만회에 나서고, 마땅한 대선후보를 승차시키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탈당파 수장 김한길 의원과 여당 잔류파 수장 김근태 의장이 ‘이별의 악수’를 나누면서 “제 취지 아시죠” “대통합합시다”란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았듯이, 올해 대선 길목에서 이들이 다시 ‘통합의 악수’를 나누게 된다면 이는 정치코미디극의 절정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이런 소극에 감동하지 않는다. 참담한 국정실패에 대한 진정한 참회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탈당파 중진의원은 아내에게서마저 “이따위로 정치하려면 당장 때려치우라”고 질타를 받았다고 했다. 노 대통령도 왜 남들은 내 마음을 그리 몰라줄까를 탓하기 전에 청와대 관저의 안주인이 왜 대통령에게 자주 싫은 소리를 하려 했는지부터 헤아렸어야 했다.

    국민과 유권자는 탈당 쇼에 속아 넘어갈 바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