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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의원들이 말문을 닫았다. 각 대선후보 진영간 신경전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후보 캠프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지난달 29일 강재섭 대표는 소속 의원은 물론 전국 각 지역 당원협의회운영위원장까지 모두 불러 연석회의를 개최했다.
당을 대선준비체제로 전환하자는 취지에서다. 이날 안경률 사무부총장은 지역 당협위원장들에게 '조직강화'와 '당원배가운동' 등을 지시했다. 임태희 여의도연구소장은 '대선유권자성향분석'을 보고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곧바로 2시간 20분간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최근 한나라당에는 굵직한 사건이 많이 터졌다.
당의 축을 이루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특별시장간 '후보검증' 공방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며 당이 크게 흔들렸고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범여권 후보설'도 당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대선주자간 날카로운 신경전이 지속되면서 '한나라당의 분열'가능성도 다시 점화됐고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이 결국 헤어져 독자출마할 것이란 여론조사까지 발표되는 등 당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그럼에도 이날 연석회의에서 의원들은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자유토론시간에 발언을 신청할 것이냐'는 물음에 대다수 의원들은 "지금 분위기에서 무슨 얘기를 하느냐"고 답했다. 민감한 시기인 만큼 괜히 문제 일으키는 것은 앞으로 정치활동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 중진 의원은 "지금 잘못 말했다가 공천 못받을 수도 있는데 입조심 해야지…, 오늘 의원들 입도 뻥끗 안하잖아"라고 했다.
의원들의 줄서기도 급속히 빨라지고 있다. '당의 균형을 잡겠다'던 소장파의 줄서기는 더욱 눈에 띈다.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 소속 의원들 중 대다수가 이미 특정 대선주자의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고 모임은 해체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특정주자에 줄을 서지 않겠다고 소리치던 이들의 목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특정 주자에 줄서지 않고 공정한 대선후보 경선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희망모임' 역시 최근 이런 당 분위기에 말문을 열지 않고 있다. 참여한 의원들 중 상당수가 이미 특정 주자에 줄을 섰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이 모임에 대해 "중립지대에서 눈치보다가 유리한 쪽으로 가겠다고 만들어진 모임 아니었냐"고 맹비난했다.
당내에선 '보수강화'와 '중도강화'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고 일부 강경보수성향 의원들과 개혁성향 의원들간에는 때 아닌 '정체성'시비까지 붙었다. 정체성 시비는 특정 대선예비주자에 대한 '탈당강요'로까지 번진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 쓴소리를 내는 의원은 없다. 오히려 대선주자 진영간 갈등과 분열을 부추길 수 있는 '인신공격성'발언만 난무하고 있다.
당 지지율이 50%에 육박하고 대선후보지지율은 70%를 넘고 있지만 국민은 한나라당의 분열을 점치고 있다. "그럴 일 없다"고 손사래 치지만 지금 한나라당은 스스로 분열을 자초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 한나라당 의원들은 입을 닫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이 언제 쪼개질 지 노심초사하며 다음 국회의원 선거를 걱정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보면서 비웃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입장이 뒤바뀔지는 전혀 모를 일이다. 변화무쌍한 정치권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