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란에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인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쓴 '더 이상 포퓰리스트 허용해선 안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1세기 우리나라가 일류국가가 되는 데 가장 큰 장애의 하나가 바로 포퓰리즘, 즉 대중 영합주의이다. 포퓰리즘이 성하면 민주화(권위주의 타파)에는 성공해도 자유화(자유민주주의의 정착)에는 실패하고, 경제적으로는 후진국에서 중진국까지는 성공해도 선진국 진입에는 실패한다.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들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도대체 포퓰리즘란 어떤 것인가? 대중 영합주의란 국가 이익에는 크게 반하나, 개인이나 정파적 이익을 위해 대중의 일시적 정서나 인기를 이용하거나 조작하거나 선동하는 정책과 정치를 의미한다. 물론 그 결과는 국가 이익의 큰 훼손이고 국가 발전의 후퇴이다.

    우리나라에서 해방 후 최대의 포퓰리즘 정책이 두 번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지난 9년간 한꺼번에 일어났고, 그것이 오늘날 나라 안과 밖의 모든 국정 혼란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그 하나는 ‘통일 포퓰리즘’의 하나인 ‘햇볕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평등 포퓰리즘’의 일종인 ‘수도 이전 정책’이다. 햇볕정책은 남북의 ‘평화통일’을 내세웠고 수도 이전은 지역의 ‘균형발전’을 내세웠다. 모든 포퓰리즘이 그러하듯이 내세우는 명분은 듣기 좋고 그럴듯하나, 실제는 철저히 정치인 개인이나 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해를 위한 정책이었다. 햇볕정책은 ‘북한의 변화’가 목적이 아니라, 일부 정치인들이 남북문제를 ‘국내와 국외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또한 수도 이전은 진정한 지역 간 균형발전보다 자신들이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대통령 선거에서 재미 보기 위해’ 시작된 정책이었다.

    도대체 역사 속의 어떤 군사독재국가가 ‘조건도 없는 경제지원’을 하는데 스스로 자신의 지배체제를 해체하겠는가? 도대체 이 세상의 어느 나라가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다고 ‘나라의 수도’를 이전하는가? 진정성과 애국심에 기초한 정책도 성공하기가 어려운데, 사심과 허구에 기초한 정책들이니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의 국가적 어려움과 국민적 고통의 대부분이 바로 이 두 가지 포퓰리즘 정책에서 유래한다. 본래 대북정책의 목적은 ‘북의 정상국가화’ 즉 ‘북의 개혁 개방’을 통한 ‘자유민주 통일’이어야 하는데, 그동안 ‘원칙 없는 퍼주기식 햇볕정책’으로 북의 변화는커녕 남의 안보의식만 약화시키고, 반대로 북의 폐쇄적 지배체제는 오히려 강화시켰다. 그 결과가 북의 핵실험과 한·미동맹의 약화이다. 결국 나라의 안보만 크게 위태롭게 만든 셈이다.

    또한 나라의 균형발전도 본래는 ‘땅의 균형발전’이 아니라 ‘인재의 균형발전’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인재의 발전’은 외면하고 행정부의 3분의 2와 170여 개의 공공기관을 지방에 강제 분산하는 식으로 ‘땅의 발전’만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니 공사도 시작하기 전에 전국의 부동산 가격만 천정부지로 올려놓는 ‘부동산 대란’을 결과하고 있다. 분배의 악화는 물론 지역 불균형도 더 심화되었다. 공사가 본격화되면 국정의 낭비와 국민의 고통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두고두고 나라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될 것이다.

    결국 햇볕정책과 수도 이전 정책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폐기하고, 올바른 정책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국익의 손실, 국민적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금년에는 대선(大選)이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가들이 다시 포퓰리즘의 유혹을 받는 해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 땅에 ‘망국적 포퓰리즘’을 허용해선 안 된다. 이번 대선에선 국민 모두가 들고 일어나 철저한 정책 검증과 인물 검증을 해야 한다. 확실하게 ‘포퓰리즘적 정책’과 ‘포퓰리즘적 선동가’를 골라내야 한다. 특히 또 다른 형태의 ‘통일 포퓰리즘’과 ‘평등 포퓰리즘’의 등장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선진화 대통령’을 뽑을 수 있고, 후손들에게 ‘세계 일류 국가’가 된 대한민국을 넘겨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