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9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과거사위)가 1970년대 긴급조치 판결사례 1412건의 내용과 담당 판사를 공개할 것이라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신설된 긴급조치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지할 수 있었다. 당시 법원은 긴급조치 위반자에게 거의 기계적인 판결을 내렸다. 박정희 독재를 비판하고 개헌을 주장하거나, 민주화 시위·집회에 가담한 이들이 주로 대상이었다.

    물론 긴급조치는 대표적인 반민주·인권침해 제도였다. 술집 강의실 길거리에서 유신정권을 비판했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적잖다. 대부분의 판사가 이런 법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구(字句)대로 형을 선고했으니 지금 '반민주' 법관이라 공격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대에는 시대마다 사정과 상황이 있다. 집권자가 경제발전과 대북안보를 위해 개발독재를 결심했고 그 수단으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택했다. 장기집권 사욕(私慾)에 의해 이뤄진 측면이 분명하나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성장을 이룩했고 안보가 지켜진 것도 무시할 순 없다. 그런 시대상황에서 판사들은 국민투표로 통과된 헌법에 따른 긴급조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법부뿐 아니라 행정부·입법부, 그리고 학계·언론도 대부분 체제를 수용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자신이 그렇게 비판하는 유신헌법 책을 공부해 '유신 판사'가 됐다.

    과거사위가 독재시대의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시대에 대한 이해와 조사결과 발표의 파장 등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어떤 판결문에도 판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특정 사안에 대해 이를 집단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당시의 판사들은 지금 대법관, 헌재 재판관 등 사법부 지도층인데 그들이 변화된 시대의 해석으로 단죄되는 것이 꼭 역사의 정의인가.

    한국의 현대사에는 빛과 그림자를 함께 안고 있는 회색지대가 많다. 과거사위가 서 있는 두 바퀴는 진실과 화해다. 진실을 캐내되 미래와 화해로 가는 방향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