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3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사회에 환원한 8000억원으로 지난해 10월 출범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교육부 퇴직자들의 집합소가 될 뻔했던 모양이다. 사무국 직원 11명 중 9명이 교육부 출신이었다. 이들은 재단으로 옮겨 가면서 10~20%씩 연봉을 올려받고, 공무원 정년보다 긴 61세 정년을 보장받았다고 한다.

    재단 설립을 위한 준비작업을 교육부가 맡아서 한 데다 장학사업이라는 재단의 성격상 교육부 출신이 많이 들어가게 됐다는 것이 교육부 측 설명이다. 또 안정된 공무원직을 버리고 재단으로 옮기는 만큼 인센티브 제공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재단 이사회의 문제 제기로 교육부 출신 직원 중 5명이 물러나고, 남은 4명의 임금도 깎이긴 했다지만 교육부의 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이들은 필요 이상으로 넓은 사무공간을 차지하고, 업무용 명목으로 고급 승용차까지 구입했다고 한다. 기부금을 거저 굴러 들어온 떡쯤으로 여기고, 자기 배부터 채울 생각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자선이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사회적 투자라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기업이나 개인이 낸 기부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노하우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공익재단의 운영은 고도의 경영마인드가 필요한 전문분야로 이미 자리 잡았다. 지난해 세계 2위의 부자인 워런 버핏이 370억 달러를 내놓으면서 자기 이름으로 된 재단을 만들지 않고, 빌 앤 멀린다 재단에 기부한 것도 빌 게이츠 부부가 설립한 이 재단의 전문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자선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라는 말까지 나오는 '나눔 경영'의 시대를 맞아 전문성 있는 인력의 확보는 공익재단의 성패를 좌우한다. 장학사업이니까 교육부 출신이 좋겠다는 식의 유치한 발상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좋은 취지에 쓰라고 한 기부의 결과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 돼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