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없이 추락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잡은 동앗줄은 결국 '4년 연임제 개헌'이었다. 1년전 개헌을 주도할 생각이 없다던 노 대통령이 9일 돌연 "너무 오래 기다렸다"며 "빠른 시일내 개헌발의권을 행사할 생각"이고 돌아서게된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이 숫자 '4'와 '8'을 교묘히 이용해 한나라당 분열과 국민적 지지를 동시에 꾀했다는 지적이다. 

    먼저 숫자 8은 '한나라당 흔들기'용으로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연임제 개헌을 강조했지만, 역설적으로 한창 대선을 향해 달리는 야당의 대선주자들에게 '(경쟁자가 연임에 성공할 경우) 8년은 좀 길지 않니'라는 꼬드김을 전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즉 경우에 따라 '차차기는 없다'는 메시지로 전해진다는 의미다.

    이는 지지율 선두를 다투는 예비주자는 물론, 차차기를 노리는 '잠룡'까지 포진한 한나라당이 자칫 확연한 세갈림을 보이며 '경선에서 지면 끝'이라는 식의 극한 대립으로 번질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번 당내경쟁에서 지면 미래도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심어줘 최종적으로는 야당 분열까지 야기해보겠다는 의도로 풀이가 가능하다.

    또 숫자 4는 개헌을 위한 국민적 공감을 끌어내면서 낮은 국정운영 지지도를 타개할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노 대통령의 지난 4년, 그리고 아직 1년이 남아있는 현실은 국민에게 '5년은 너무 길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연임보다 4년이라는 임기에 눈이 가게 된다는 의미다. 국민들은 노 대통령 때문에 더욱 개헌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지만, 결국 노 대통령에 동조하는 셈이 돼버렸으니 이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여론조사에서 다수 국민이 개헌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특별담화를 마친 노 대통령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여러분도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며 기자들의 질문을 거부했다. 그는 "멀지않는 시기에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답변할 기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일단 개헌논의를 선수쳐 흔들어놓았으니 주도권을 쥐고 대응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으로 비쳐진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개헌제안과 동시에 홈페이지에 장문의 자료집을 게재하며 '개헌바람 일으키기'에 주력했다. 치밀한 사전계산과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청와대는 자료집에서 '왜 4년 연임제인가' '왜 임기조정을 해야하는가' '왜 지금 해야하고, 시기적으로 가능한가' 등 목차를 나누며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 또 청와대는 정치권의 주요발언을 소개한답시고 이례적으로 한나라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개헌관련 언론보도내용을 따로 모아 공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