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 동안 TV드라마를 보면 가히 사극전성시대라 할 만큼 역사드라마가 안방을 파고들고 있다. 고구려 건국을 배경으로 한 '주몽'(MBC)이 40-50%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7세기 고구려의 실력자를 그린 '연개소문'(SBS)이 20%라는 높은 시청률로 호평을 받고있다. 뒤이어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영웅담을 그린 '대조영'(KBS1) 역시 높은 시청률을 얻고 있다. 그런가하면 고구려의 대군주 광개토대왕을 그린 '태왕사신기'도 2007년 봄에 방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역사드라마는 어제 오늘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조선의 건국사를 다룬 '용의 눈물'은 IMF가 엄습해 국민들이 어려운 나날을 보내던 지난 97년과 98년 국민드라마로 각광을 받았다. 뒤 이어 '허준'도 IMF로 고통 받던 지난 99년과 2000년에 방영돼 60%가 넘는 기록적 시청률로 호평을 받으며 국민들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주었다. 그 후 ‘왕건’ ‘불멸의 이순신’과 ‘해신’ ‘서동요’ 등은 역사극을 고려시대를 거쳐 삼국시대로 끌어올렸다.

    역사드라마가 이처럼 각광을 받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웅혼했던 과거사로 현재의 우울함을 달래고 그들의 영웅담을 들으며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동북아에 불고 있는 중국 러시아 일본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여 통일과 민족부흥의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사극을 통하여 국민정신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통상 우리는 지금의 정세를 구한말과 비슷한 것으로 비유하는데, 그 당시 우리 지도층이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거센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버리는 바람에 서구 열강에게 이권을 다 넘겨주고 급기야 국권을 강탈당하고 역사상 초유의 식민통치를 당했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세계는 경제 제국주의시대에 돌입하여 힘이 약한 국가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직면했다. 우리나라는 근대화에 성공하여 1996년에 국민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 시대를 맞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겨우 1만 6000 달러를 이루어냈다. 다른 국가들은 1만 달러에서 1만6000 달러를 달성하는데 3-4년이 소요되었는데 우리는 10년이나 걸렸다.

    여기서 멈칫거리다가는(연평균 경제성장이 3%일 경우 2020년에야 2만 달러 가능) 1인당 소득 3만8000 달러의 일본에게 또다시 당할 우려가 높고, 막강한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감안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정세의 자각은 국민들의 역사공부를 더 한층 강화케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의 5000년 민족사는 겨레의 삶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소중한 역사이다. 우리에게서 일부라 할지라도 역사를 제거한다면 그것은 바로 한민족의 실종선고(失踪宣告)나 다름없는 짓이다. 세계사를 봐도 찬란한 문명을 이룬 희랍과 페르시아, 이집트, 몽골, 티베트 민족들이 지금은 희미해진 것은 다 역사의식의 실종 탓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란, 자긍심이나 자존심만으로 지켜지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의 융성과 발전을 통해 역사를 굳세게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근로의식과 함께 모든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두려워하고 대화와 협상 테이블에서 대등하게 대하려는 자세를 갖추도록 압박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각자가 의연한 자세와 더불어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국부(國富)를 증대시켜 하루 속히 2만,3만 달러 시대의 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일찍이 춘원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을 주장하고, 시인 조지훈이 선비의 지조론을 강조한 것은 그 공과(功過)는 차치하고 험한 격랑이 이는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진정한 역사의식을 갖춘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교교육에서 체계적인 역사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전쟁이 나면 외국으로 간다’는 식의 국가 정체성을 잃고 허둥대는 것은 다 국사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받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감흥과 교훈은 개인과 국가의 보이지 않는 큰 정신자산이 된다는 점을 알고 입시위주의 암기식 교육이 아닌 역사의 교훈을 알게 하는 참 교육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애국심이 없으면 나라를 빼앗긴다’는 고금(古今)의 진리를 우리의 자라나는 2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