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 '만물상'란에 이 신문 이선민 논설위원이 쓴 <'허위지식인 4인방'>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작가 앙드레 지드는 프랑스 식민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1930년대 초반 공산주의로 기울었다. 그러나 1936년 고리키의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소련을 다녀온 뒤 쓴 기행문에서 소련의 폐쇄성과 전체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자신의 오류를 솔직히 인정한 지드의 글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많은 사람들이 소비에트 체제를 다시 보게 했다.

    ▶우리 주변엔 이와 달리 이미 오래전에 철 지난 이념을 질기게 붙들고 있는 지식인들이 적지 않다. 뉴라이트 운동의 한 축인 자유주의연대가 그제 강만길·백낙청·리영희·한완상 전(前) 대학교수들을 “진보의 탈을 쓰고 반(反)지성과 허위의 논리를 펴 나가는 허위지식인 4인방”으로 지목했다. 뉴라이트재단이 발간하는 계간 ‘시대정신’은 지난 가을호와 겨울호에서 강만길·백낙청씨에 대한 실명 비판을 한 바 있다.

    ▶70세 전후인 이들 좌파 지식인은 1970~1980년대 대학사회의 스타였다. 민주화운동에 참가해 해직됐다는 전력(前歷)이 훈장이 됐다. 당시 사회에 관심 있는 대학생치고 이들이 쓴 ‘전환시대의 논리’ ‘민중과 지식인’ ‘한국 근·현대사’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등을 한두 권 읽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들은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정부 안팎의 요직을 맡았다. 이 정권의 정신적 사부(師父)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요즘 이들의 입장은 “무엇인가를 바꿔야 한다”는 쪽에서 “뭔가를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진보적’ 역할이 끝난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달성한 한국의 성공, 사회주의 몰락,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한 기둥으로 변한 중국의 변모 등 세계의 흐름이 바뀌어 버렸는데도 이들은 이전 주장들에 매달려 있다. 리영희씨는 중국의 문화혁명을 미화한 데 대해 “당시 세계의 중국 현대사 연구자들에게 거의 공통됐다”고 변명할 뿐, 수많은 젊은이들을 오도한 책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은 북한을 방문해 실상을 알게 된 뒤에도 계속 침묵하고 있다.

    ▶한때 ‘진실’의 대변자로 존경받다 이제는 ‘허위’지식인으로 비판받게 된 이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씁쓸하다. 역시 ‘새 술은 새 부대에’일까. 중도 성향의 중견 철학자 윤평중 교수도 최근 백낙청·리영희 교수에 대한 본격 비판을 시도했다. 20세기 후반의 이념과 이론에 사로잡힌 사람들과의 담론 투쟁에서 눈 밝은 후배 지식인들이 승리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진정한 21세기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