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햅쌀로 밥을 짓고 송편을 빚어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고 타지에서 일하는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는 민족명절 추석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북 외무성이 3일 발표한 ‘핵실험’ 공갈이다.

    사실 전국적 여론형성의 분수령이 될 올해 추석연후의 2대화제는 여권발 정계개편 논의와 조기 발화된 한나라당 대선 레이스 경쟁이었다. 특히 아직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은 여당보다는 벌써 3명의 주자 중 유력 후보 2명이 대선출마선언을 한 한나라당의 대권 경쟁은 인구에 회자될 흥미진진한 화제거리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느끼는 일상의 즐거움인 ‘추석식탁’을 김정일의 핵공갈이 가로채버린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3일 “북한 핵실험 계획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대응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4일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노 대통령은 북한 핵은 일리가 있다. 북한이 핵 실험을 해도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와는 무관하다는 무분별한 발언이 이 같은 사태를 촉발시킨 측면이 있다”며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고 미온적으로 대응해온 통일, 국방장관 등 관계자들은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정국의 중심이 대선경쟁에서 안보문제로 급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나라당의 대선레이스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일 중앙일보가 발표한 한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단일화가 힘들 것’이라는 여론이 50%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조차 단일화 가능성과 실패전망을 각각 46%대 44%로 비슷하게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마도 지난 97년 경선불복을 한 ‘이인제 학습효과’와 2002년 대안부재를 주장한 ‘이회창 대세론’이 결국 좌파정권의 길을 열어준 것이라는 보수세력들의 반성에 따른 우려일 수 도 있다. 그러나 민심은 현실정치를 재단하는 선행지수이기 때문에 단일화 성패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는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많은 함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 해법으로 많은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먼저 ‘손학규 역할론’이다. 양강구도 보다는 다자구도로 가야 양강의 이탈을 막는 견제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다음은 ‘조정 세력론’이다. 지도부를 대신해 대선주자간 조정에 나설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서론’도 등장한다. 필요하다면 경선전 예비주자들로부터 경선결과에 승복한다는 각서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논의가 한나라당을 사랑하고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국민의 여망을 받드는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선 당사자들의 마음의 여유와 자신감이 아닐까.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등 대선후보 선출방식을 둘러싼 논란도 적전분열(敵前分裂)을 야기할 수 있다. 내년에 논의해도 충분한 사항이다. 또한 예비후보들의 물밑 치열한 ‘세불리기’나 의원 및 당협위원장들의 ‘눈치경쟁’도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대선은 15개월 앞에 남아있다. 한나라당 경선도 8-9개월이나 남아 있다. ‘빨리 빨리’가 득이 될지, 대선 조기 과열을 부추긴다는 언론의 역풍을 맞아 실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될 것 같다.

    무엇보다도 한나라당이 내년 정권교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금년 정기국회를 알차게 마무리해야 한다. 국민들은 열심히 일하는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청년실업, 민생파탄, 무너지는 서민경제를 챙겨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강 대표가 일각의 분열을 우려해 내놓은 “내년 1·2월경 대선 후보와 대표, 최고위원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에 대선주자들이 호응해주는 것이 당과 후보 모두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을까.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누가 되더라도 좋으니 확실한 정권교체만 해달라”는 국민의 소리에 후보들은 귀기울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