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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면에 서울대 김란도 교수(소비자학과)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벌써 내년 대선이 느껴진다. 정계개편 논의가 피어오르고,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 제도에 대한 논란이 나오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출마의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이야 대목 맞은 상인처럼 분주하겠지만, 그걸 바라보는 마음은 영 마뜩찮다. 정략만 무성할 뿐, 희망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한나라당은 이번 대선에서도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여당의 지지율이 바닥이지만, 한나라당이 '대세'에만 안주한다면 낭패를 볼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예상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나라당이 국가의 지향점과 운영방식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난 4년간 한나라당은 미래 한국의 청사진을 국민에게 제대로 제시한 적이 없다. 대통령이 내놓는 의제에만 끌려다니기에 바빴다. 그나마 참신하고 치밀한 논리로써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일간지를 다시 읽어주는 수준의 반대에 지나지 않았다.
의제 설정 능력의 부재는 단순히 역량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당이 대선후보군을 축으로 사분오열돼 있다는 데 있다. 계파 간의 샅바싸움에 온통 정신이 팔린 나머지, 당 전체를 아우르는 나라 발전의 비전은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변해야 한다. 성희롱·골프 등의 스캔들이 있을 때마다 거창한 자정 구호를 외치지만 그것이 환골탈태의 본질은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이 들고나오는 이슈를 뛰어넘는, 더 본질적인 의제를 창출해 국민에게 거당적으로 제시하여 수권 이후의 희망을 보여주어야 한다. 일부 네티즌들은 한나라당을 '딴나라당'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의제 설정 능력을 상실한 채 반대로써만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나라당의 지금을 생각하면 그러한 비아냥거림이 단순한 조롱만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집권당의 프리미엄을 안고, 이슈의 선점에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논란은 크지만 전시 작전통제권을 둘러싼 자주 담론, '비전2030'이나 나랏빚이 크게 늘어난 새해의 팽창예산에서 드러나는 분배 담론 등이 그 예다. 그 적실성이나 실현 가능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제시를 국민적 합의는커녕, 많은 우려와 비판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많이 고민했으니, 긴 말 말고 따라오라"는 폐쇄적 오만이 늘 엿보인다. 많은 사람이 참여정부의 언어 비용을 지적한다. 그러나 언사의 품위보다 견디기 힘든 점은 국가의 흥망성쇠가 걸린 일을 너무나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지한다는 것이다. '열린'당이 아니라, '닫힌'당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내놓는 담론의 더욱 큰 문제점은 분열적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교육정책에서 보듯이 국민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시키고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한다. 이러한 분열정책은 다분히 정략적인 것으로 읽힌다. 쟁점을, 예컨대 자주냐 의존이냐 하는 식의, 감정적 문제로 단순화하면 저조한 지지율과는 관계없이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결시켜 단번에 박빙의 승부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논란과 분열이 클수록 유리한 것이다. 국가경쟁력의 순위는 추락하고,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우경화 등 국제정세는 긴박한데, 국가의 대사는 안중에 없이 '편 가르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책임 있는 여당의 도리가 아니다. 민주국가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얼마나 합리적이며 그 결과가 얼마나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느냐에 있다. 내년 대선이 '우리'가 아닌 '남'으로 나뉜 채 표 몰아주기의 광란 속으로 빠질 것으로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국민에게 지금 '우리당'은 '남의당'일 뿐이다.
내년 대선이 각 정당 간의 진지한 정책대결로 불꽃이 튀는 정치적 축제의 마당이 되기를 희망한다. 후보의 개인적 약점을 서로 과장하고 감정적인 거대담론에 의해 국론이 분열되어, '덜 미운 놈 찍어주기'가 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암담한 내년이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우리 정치를 책임지는 두 정당이 '딴나라당'과 '닫힌남의당'의 오명을 씻고, 나라 발전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경쟁에 몰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