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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이기는 장관 없소?
한서(漢書) 한안국전(韓安國傳)에는 ‘강노지말력(彊弩之末力)’이라는 말이 있다. ‘강력한 화살이 처음에는 힘차게 나가나, 떨어질 때에는 아무런 힘도 없다’는 말로 원래는 강하던 것이 이제 이미 쇠약하여졌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노무현 참여정부도 이젠 임기가 1년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서서히 하산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장기간의 해외순방으로 쌓인 피로로 몸살이 걸려 지방방문 일정을 취소했다는 보도(9월 23일)가 있었다. 노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예정된 행사에 불참한 것은 취임 후 사실상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타고난 건강 체질이고 환갑도 안 된 나이이기 때문에 몸살이 단순한 육체적 피로의 누적 탓만은 아닐 것이다. 마음의 병까지 겹친 결과는 아닐까.
노 대통령은 해외순방기간(9월 3-16일) 동안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총 11차례 단독 정상회담을 했다. 그러나 그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정상회담에서 ‘대북제재’와 관련해서는 미국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한 가운데 미국은 물론 일본, 호주까지 가세하여 대북 제재가 현실화되는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전시작통권 단독행사’와 관련해서는 국민의 여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한나라당이미국 의회와 행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제 2차 방미단을 파견하게 만들었다.
국내 정치는 노 대통령이 지명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국회 임명 동의가 세 차례나 무산되면서 헌재소장 공석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레임덕 인정하고 대통령과 코드 맞추지 마라
과연 꼬일 데로 꼬인 국내외 답답한 현안들을 어떤 해법으로 풀것인가. 그 답은 레임덕을 인정하고 오기를 부리지 않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참여정부 내각에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지 말고 국익차원에서 일하라’는 지시를 내리면 어떨까.
현 정권에는 대통령을 이기는 장관이 한 명도 없다. 교육부 장관으로 내정된 교수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평소 교육자로서의 자신의 교육철학을 장관벼슬을 받기 위해 폐기해 버렸다.
불의한 청와대의 지시(편법적인 헌법재판관 임기 연장)를 거부하지 못한 전효숙 후보자도 원칙을 지키지 않아 자신이 평생 동안 쌓아올린 금자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결국 대통령에게 까지 부담을 주는 참담한 과정을 겪고 있다.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이 정부 경제 운영자들은 대통령의 말씀(“국민후생과 경제성장이 같이 가지 않으면 성장은 의미가 없다”)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며 성장마인드, 이윤동기를 죽이며 ‘평등’발 한국경제의 재앙(災殃)을 부채질하고 있다.
통일·외교 장관들은 4강(미·일·중·러)외교에 관한 석학의 충고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폴 케네디 미 예일대 교수는 한국을 ‘4마리의 코끼리에 둘러싸인 개미’로 보고 “정신 차리고 외교력을 기르라”고 당부한 적이 있다.
이 정권의 외교기조인 ‘자주외교’나 ‘동북아 균형자론’은 이미 총체적 실패로 결론이 났다. 이 정권 출범 이후 전통의 한·미·일 3각 공조체제의 틀을 깨고 ‘민족끼리’ 코드로 갈아탄 결과 미국, 일본과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왔고 중·러와의 관계는 예전보다 못한 결과가 되었다.
3각 공조가 무너지고 한국은 ‘세계의 외딴섬’으로 남아 있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과거보다 한국에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국방장관은 15명의 전직 국방장관들이 반대하는 작통권 단독행사를 혼자서 외롭게(?) 사수하고 있다. 그도 얼마 후면 전직으로 남을 텐데 말이다. 퇴임 후 왕따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제 노 정권은 남은 1년 5개월 만이라도 ‘자주’와 ‘평등’의 환상에 함몰돼 있는 정책기조를 바꿔야 할 것이다. ‘고산지전무미목(高山之巓無美木)’이란 말이 있다. ‘높은 산에 좋은 나무가 없듯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뭇 사람에게 비난을 받아 미명(美名)을 남기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과연 장관직 몇 개월, 일 년 더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나라의 장래를 위해, 미명(美名)을 남기기 위해 자리를 걸고 잘못된 정책노선을 바꿔나갈 소신파는 과연 없는가. 국민은 대통령을 이기는(?) 장관의 출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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