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0일자 오피니어면에 이 신문 양상훈 정치부장이 쓴 '정말 기가 막힐 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제 와서 보니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으면 우리 이익을 최대한 지킬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이 그런 기회를 모두 날렸다. 그 때문에 우리 국민이 앞으로 치러야 할 유·무형의 비용은 헤아리기도 어렵다.
미국은 이미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에 넘기기로 결정해 놓고, 때만 보고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자들 증언을 통해 거듭 확인되는 사실이다. 미국이 작통권을 넘기겠다는 것은 자신들의 필요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주한미군처럼 어느 한곳에 군대를 붙박이로 박아 두기 어려운 입장이다. 군사 전략 변화와 첨단 군사기술의 발달로 군대도 해·공군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를 원하는 미국 입장에서 전시 작전통제권은 걸림돌일 수밖에 없었다. 유사시 미군 사령관이 한국 방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면 현재의 한미연합사 체제, 작전계획 5027, 시차별 부대전개 목록(유사시 미 증원군 투입 계획)도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미국이 원하는 변화는 추진하기 어렵다. 미국은 그래서 작통권을 넘기기로 한 것이다.
주한미군이 점점 한국민에게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었다. 서울에서 주한미군 병사가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를 본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갓 댐 잇! 겟 뎀 아웃!”(God damn it! Get them out!―제기랄, 빼버려!)이라고 내뱉었다는 말도 들린다.
결국 미국은 한국에 작통권 이양 얘기를 꺼내게 돼 있었다. 이미 이 정권 초창기에 그런 낌새가 보였다. 아쉬운 쪽은 미국이었다. “군 체제를 바꿔야겠다. 미안하지만 작통권을 가져가 달라”고 미국이 아쉬운 소리를 우리 쪽에 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전략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얘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어야 했다. 미국이 얘기를 꺼내면 끝까지 안 된다고 버텨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어낼 수 있었다.
첫째, 작통권 이양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 지금처럼 2009년 이양을 기정사실화하고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둘째, 작통권 단독행사에 드는 수백 조원의 비용 지출도 최대한 줄이고 늦출 수 있었을 것이다. 작통권 단독행사를 위해 우리가 사야 하는 미국의 비싼 무기들 값도 깎고, 구입 시기도 미루면서 그 재원을 더 효율적인 곳에 쓸 수 있었다. 미국이 갖고 있는 첨단 정보 장비들을 더 오래 활용하면서 그 기술도 이전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 일본에는 팔면서 한국에는 팔지 않는 무인 정찰기 글로벌 호크도 아마도 우리 손에 들어왔을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필요한 기술 등을 반대 급부로 제공할 수 있는 국가에만 글로벌 호크를 판다. 따라서 지금 상태로는 우리가 이 정찰기를 사는 것은 요원할 수 있다. 글로벌 호크만이 아니다. 다른 고급 장비, 고급 기술들을 입수할 수 있는 협상력을 저절로 갖게 됐을 것이다.
셋째, 방위비 분담 등 미국과 벌여야 하는 각종 협상에서도 음으로 양으로 득을 보았을 것이다. 잘만 했으면 최종적으로는 미국으로부터 “고맙다”는 말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막대한 국민 세금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20년까지 621조원을 여기에 쓴다는데 그 액수를 줄여서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던 기회비용과 금융 이득 등을 합치면 수십 조원이 될 수도 있다. 안보 위험 최소화와 첨단 기술력 확보의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도 없다.
그런데 대통령 한 사람이 취임하자마자 느닷없이 “자주(自主)를 위해 작통권을 되찾아오겠다”고 먼저 나서면서 이런 유리한 우리의 입지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미국은 “이게 웬 떡이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는 거꾸로 우리가 미국에 “제발 작통권 이양 시기를 늦춰 달라”고 사정을 하는 처지가 됐다. 필요한 무기도 미국이 배짱 튕기며 부르는 값대로 바가지 쓰면서라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가 막힐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