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0일 사설 '제1야당 간판이 부끄러운 한나라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이 29일 의원총회와 결의대회를 잇따라 열어 정부에 전시 작전통제권 논의 중단을 촉구하려다 불발로 끝났다. 소속 의원 126명 중 절반 이상이 불참한데다 참석 의원들 간에도 의견을 한곳으로 모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 대표부터가 의총이 끝나기도 전에 약속이 있다며 회의장을 나가다 의원들로부터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놓고 의원총회를 하는데 지도부가 어디 가느냐”는 항의를 받았다면 더 말할 것이 없다. 당 지도부가 전작권 논의의 중단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힌 뒤 의총장은 “논의를 중단하라고 하면 사대주의적 발상이란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 연기라고 하자”는 주장과 “연기라고 하면 약하다”는 반론이 뒤엉켜 어수선했다고 한다.

    전시 작전권 문제란 기본적으로 북한의 공격 등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한미연합사 체제를 통해 공동으로 대처하는 게 효과적이냐 아니면 한·미가 각기 다른 지휘체계를 통해 대처하는 것이 효과적이냐 하는 효율성의 문제다. 한·미 공동 지휘체계에서의 외부 공격은 한국군과 미국군에 대한 공동 공격으로 간주되어 방대한 미군 지원 병력이 자동적으로 투입되게 돼 있고, 이것이 한반도에서의 전쟁 억지에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전작권을 단독 행사하게 되면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서 지난 50년 동안 의존해 왔던 안보구조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전작권 문제는 국군통수권이나 주권이나 자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제다. 어느 시스템이 전쟁을 방지하는 데 효과적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일 따름이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자주니 주권이니 하는 선동 구호를 끌어들여 전작권 문제에 대한 국민 생각을 혼란시키는 선동전술로 일관해 왔다. 대한민국이 전쟁터가 돼 잿더미가 된 뒤의 승리보다는 전쟁 방지가 수 십 배 중요하다는 것을 무시하는 위험 천만한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작권 단독 행사로 인한 안보의 허점을 메우기 위해 국민의 빈 호주머니를 털 생각만 하고 있다.

    그래서 나이 아흔을 바라보는 창군(創軍) 원로들까지 삼복 더위에 낡은 군복을 꺼내 입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제1야당이란 한나라당이 에어컨 바람 쌩쌩 나오는 국회의사당 안에 모여 결의문 하나 채택하자는데 소속의원들이 현장을 피하거나 갈팡질팡하는 추태를 벌인 것이다. 정권이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를 놓고 이념적 도박을 하고 있는데도 제1야당이란 정당이 정권의 선전 선동에 겁을 먹고 야당의 본분마저 내팽개쳐 버렸다면 그 정당은 이미 죽은 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