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결론을 내렸다. 결론은 지금 내가 쥔 소총과 수류탄을 가지고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놈들을 몽땅 쏴 죽이고 나도 죽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속이 편하다.

    나는 왕따다. 결국 자살하고 만다는 군대 왕따다. 그러나 나는 혼자 죽을 생각이 없다. 혼자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쓸쓸하다. 사람 죽이라고 배운 기술, 이 참에 쓰레기 같은 새끼들 죽이는데 같이 써먹어야지.

    난 군대 오기 전에 평범한 시민이었다. 별볼일 없는 대학이지만 대학을 다녔고 붙임성 없는 성격이지만 몇 명의 친한 친구도 있었다. 여자 친구도 있었는데 내가 군대 오자마자 변심해 버렸다. 나쁜 년.

    그 년도 같이 쏴 죽여 버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 년까지 쏴 죽이러 멀리 나가고 싶진 않다. 나도 양심있는 놈이다. 재수없는 새끼들만 쏴 죽이면 되지 탈영해서 무고한 시민들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다. 그 년을 쏴 죽이러 탈영을 했다간 무고한 시민들까지 죄다 쏴 죽여 버릴 것 같다. 앞으로 살아 갈 부모님을 생각해서 그런 짓은 하지 않으리라.

    물론 부모님 생각도 했다. 군대 갔다 온 선배들이 군대에서는 늘 부모님 생각하면서 살으라고 했다. 아무리 좆같은 상황이 전개되어도 참으라는 충고였다. 그러나 씨발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이런 지옥에서 앞으로 1년 반 이상을 더 썩자니 내가 스스로 뒤질 것 같다.

    좆같은 고참 새끼들 때문에 왕따가 되고 나니 군대생활이 곧 지옥이었다. 이 놈 저 놈 갈구는 새끼들 때문에 신경 쓰이고 고참 새끼들은 수시로 두들겨 팼다. 군대에 구타가 없어졌다지만 그 말은 확실히 뻥이었다. 물론 복학생 선배들의 설명 때문에 그 이야기는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하여간 군대는 사람 새끼 갈 곳이 아니란 선배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어떻게든 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진작에 뺐을 것을.

    아, 이렇게 나도 죽어야 하는 것일까.

    솔직히 겁이 나서 발이 안 떨어진다. 이제 1시간 후면 보초 교대시간이다. 다음 놈이 와서 나한테 또 갈궈대고 자빠져 자라고 하겠지. 그래도 이렇게 버텨봐야 하나. 아니야. 이 죽는 것보다도 못한 생활 접어버리자. 포기해 버리자. 그리고 빌어먹을 개새끼들한테 총이나 쏴 갈겨주고 세상 하직해 버리자. 이렇게 깽판 지랄을 해야 위에 높은 대가리에 있는 새끼들이 군대 바꾼다고 또 지랄을 해댈테니. 대가리에 있는 새끼들은 뭔가 일이 터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새끼들이다. 내가 차라리 죽고, 여기 있는 이 씨발 놈들도 내가 쏴 죽여 버려야 이 나라 군대가 발전한다.

    그래, 씨발. 내가 애국자다. 이 좆만한 새끼들 오늘 내 손에 다 죽어봐라. 밤마다 내 곁에 와서 내 좆 주물럭 거리던 오 병장, 졸라 씨발 걸핏하면 갈궈대던 장 일병, 사회에서 양아치 노릇하다 왔는지 툭하면 주먹으로 패던 정 상병, 특히 정 상병 이 새끼는 반드시 죽일 놈이다.

    정 상병이란 새끼가 나서서 나를 왕따로 만들었다. 그 무시무시한 군대 왕따로. 군대 왕따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시민들은 잘 모른다. 직장 왕따나 학교 왕따 정도하고는 격이 다르다. 직장 왕따는 그깟 회사 옮겨 버리면 그만이고 학교 왕따는 학교 집어 치우고 검정고시치면 된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그런 것 없다. 군대는 감옥과 같다. 일단 한번 배치되면 어디로든 갈 수 없다. 군대에서 전출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전출되어 간 다음에도 왕따 신세가 된다.

    아무튼 군대에서는 나쁜 일이 생기면 너도 나도 쉬쉬한다. 높은 새끼들도 자기한테 불이익이 떨어질까봐 쉬쉬한다. 아참, 그래 소대장 놈 새끼도 죽여 버려야 한다. 이 새끼는 내가 진작에 고통받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걸 밑에 놈들한테 찔러 내가 더 두들겨 맞게 만든 놈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는 척도 안하는 새끼다. 이 씨발 놈도 죽여 버릴 거다.

    일단 왕따가 되고나니 밑에 새끼들도 내 말을 좆으로 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일들이 다 내게 떨어진다. 당연히 내가 그 일들을 다 해낼 수 없다. 그러니 갈굼당하고 두들겨 맞고 하루 하루가 지옥같다. 이런 지옥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 다 죽여 버리고 나도 죽으리라.

    나는 등에 멘 K-2소총을 두 손에 들었다. 묵직한 소총의 느낌이 믿음직 스럽다. 그리고 몸에 붙어 있는 수류탄을 쓰다듬어 보았다. 수류탄의 감촉이 짜릿하다. 이 새끼들, 다 죽여 버린다.

    나는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보는 새끼부터 죽여 버려야지. 그런데 눈에 걸리는 새끼가 없다. 어디로 갈까. 그래 내무반으로 가자. 자빠져 자는 새끼들한테 수류탄 맛을 보여주는 거다. 그래. 바로 그거야.

    룰루랄라. 신바람이 난다. 나는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내무반을 향해 간다. 그런데 선임하사 놈이 나타났다.

    ‘야, 새끼야! 너 뭐야!’

    뭐긴 뭐야, 이 씨발 놈아!

    나는 답변 대신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탕!

    선임하사 놈의 배떼기를 총알이 뚫고 지나갔다. 선임하사 놈의 배떼기가 폭발하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는 것이 전쟁영화의 한 장면 같다. 너무 멋있다. 하사 놈이 자빠지는 것을 보면서 잠깐 그 장면에 취해 있던 나는 이제 이 총소리 때문에 온 부대가 난리가 날 것이란 사실을 기억해 냈다.

    빨리 내무반으로 가야지.

    내무반을 보니 불이 켜져 있었다. 허둥지둥 일어나는 모양이다. 그래. 멋진 기상나팔을 불어주마. 옛다 받아라. 나는 수류탄을 내무반을 향해 집어 던졌다.

    콰아아앙!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멋지다. 이 씨발 놈들, 다 죽어봐라. 나는 수류탄을 던진 수류탄 안으로 달려 들어가 소총을 마구 난사했다. 부대원들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나는 더욱 신이 났다. 이 개새끼들 다 죽어라. 똥 먹이고 두들겨 패고 병들어도 제대로 치료도 안 해주고 돈도 제대로 안 주고 인간을 짐짝 취급하는 빌어먹을 한국 군대 새끼들 다 죽어라. 이 씨발 놈의 세상 다 뒤집어져 버려라!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인터넷 게임에서 즐기던 살인 장면이 눈 앞에 나타나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 앙심, 걱정-근심이 시원하게 풀리는 것 같다.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나는 내무반 밖으로 뛰쳐 나갔다. 허둥지둥 뛰쳐 나오는 새끼들 까지 몽땅 죽여 버려야지. 아, 오늘 밤은 평생 잊지 못할 너무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