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가 그 동안 내세운 정의와 평등의 향기의 유혹은 진보 스스로와 공동체 전체를 독선과 반지성, 분열과 파괴로 몰아가는 역사의 덫이 되어 버렸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가 11일 서울 종로구 원남동 바른사회시민회의(공동대표 박효종, 김종석) 회의실에서 열린 ‘한국의 진보: 희망인가 덫인가’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조 교수는 “통일-반통일의 전선을 구축한 우리 시대의 진보는 21세기적 희망이 아니다”며 진보진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조 교수는 진보가 역사의 덫이 돼버린 과정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말’이 ‘사실’을 왜곡하게 될 때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세계에 빠진다”고 전제한 뒤 “햇볕정책 이후 한국의 진보는 ‘말이 가지는 형식논리상의 우열을 수단으로 가치와 사실의 우열을 결정하려는 오류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현재 한국의 진보-보수의 역학은 ‘진보’ 우위 비대칭 구도가 구조화되어 있다”며 “노무현 정부와 함께 한국 정치는 단순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민중주의적 민주주의를 확대시키기 위한 진보적 개혁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고 규정했다.

    조 교수는 “한국의 진보∙개혁정치는 통일과 자주, 정의와 평등의 요란한 나팔소리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햇볕정책에서 평화 번영정책으로 이어진 대북포용 및 통일지향정책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남북관계의 평화적 제도화를 이끌어내기보다는 통일-반통일, 민족-반민족의 근본주의적 분열을 심화시켰으며 ‘자주’의 팡파르는 안으로 권력의 의한 역사의 덧칠과 정체성의 자기분열증을 노정시켰고 밖으로 모험주의적 허세와 외교적 고립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의와 평등을 향한 개혁은 ‘기득권 해체’라는 구호정치의 푸닥거리로 전락해 그런 단어들이 가진 엄중하고 신성한 의미마저 훼손시켰다”고 덧붙였다.

    또 “한국의 진보, 개혁정치는 미래를 여는 성찰과 희망이 아니라 오로지 냉전적 보수적 과거에 대한 전면적이고 무조건적인 청산, 역사의 대한 복수, 혹은 과거와의 전쟁과 다름없다”면서 그는 “이 전쟁에서 건국-산업화-민주화의 땀과 보람은 자유민주주의의 헌정 질서, 글로벌 시대의 도전과 국제협력 기회로 귀결되기보다, 강단 사회주의자들의 궤변, 진보를 빙자한 건달정치가의 독설, 좌파 상업주의에 중독되고 급조된 시민운동가들의 맹목적 정념에 의해 깡그리 매도 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통일정책의 진보적 선택’이라고 규정지은 진보진영이 이에 반대하면 반통일 반민족의 낙인 찍히게 되는 기이한 현상을 이끌어냈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노 정부와 함께 ‘자주’라는 순혈주의의 이름으로 역사의 판관을 자임하면서 반외세로 포장된 반미를 일반화 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정권의 출범을 바탕으로 한 진보정치의 실험은 진보의 비성찰적, 반지성적 오만, 권력에의 편승과 더불어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진보시키기 보다 혼란과 분열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21세기적 현실을 염두에 두고 민주적 공론장의 형성과 실용주의적 정책경쟁이라는 게임의 룰을 만드는데 진보-보수 공동의 힘을 모아 거듭나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