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승적 차원’에서 당으로 돌아왔다는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이지만 ‘강재섭호’에 쌓인 앙금은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18일 강재섭 대표가 단행한 당직 인사를 통해 ‘친(親)강재섭’ 인사가 중용되면서 ‘친박(親朴)-친강(親姜)’체제가 구축된 것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당직 인선을 의결하는 의원총회에도 불참한 이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한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번 당직개편을 “자기 사람 챙기기”라고 폄훼했다. 같은 날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도 7·11전당대회가 대리전과 색깔론으로 치러졌다고 비판했으며 이에 “박 전 대표의 인상이 오히려 나빠졌다”는 김 전 대통령의 ‘평’을 얻어냈다.

    이처럼 이 최고위원은 연일 당 밖에서 당 지도부를 향해 ‘도로 민정당’이라고 서슴없이 비판하고 있다. 전대와 당직 개편 등을 통해 당 주요직에 ‘친박-친강’ 인사들이 포진함으로써 수적 열세에 놓인 당내 상황을 당외 비판 여론 형성으로 돌파하려는 ‘이재오식 장외투쟁’으로 보인다. 


    이 최고위원은 이날 CBS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해 “당을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할 사람들은 아무래도 선거 때 자기를 도와준 사람들을 챙기기 마련”이라며 강 대표가 단행한 당직 인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이번 당직 개편에서 소장·개혁파가 배제됐다고 지적하며 수구적 이미지를 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한나라당 내부가 변화와 개혁을 수용하는 토대 위에서 중도가 필요하지 중도를 잘못 강조하면 한나라당에서는 수구가 된다”며 “수구의 또 하나의 모습이 중도로 나타나면 안 된다. 변화와 개혁의 과정에서 진정한 중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한나라당의 미래와 진로에 대해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며 “수구적 이미지, 부패의 이미지, 웰빙의 이미지, 무사안일의 이미지 같은 것들을 당 구석구석으로부터 벗겨내는 게 한나라당의 변화 개혁”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은 나에게 일등을 주었으니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하자”며 인터뷰 내내 ‘민심’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 이 최고위원은 대선후보 경선에 일반 국민들의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전대에서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강 대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는 열린우리당에서 추진하려는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 개방형 국민참여경선)를 거론한 뒤 “누가 이기느냐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정말 국민이 어떤 형태의 정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 지도자를 원하느냐에 초점을 둬야지 우리 내부에서 당원이 누구를 좋아하느냐를 갖고 국민의 대표를 뽑는 것은 부적합하다”며 “이번 전대에서 당의 얼굴을 두고 당심과 민심이 너무 다르니까 이래서는 국민의 민심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반성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세 사람의 후보(박근혜·이명박·손학규)가 거의 확정된 상태이니 세 후보 의견도 존중해줘야 한다”며 “우리가 만들어 놓은 틀 속으로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세 후보가 어떤 틀을 원하는지도 조정해야 한다”고 일정한 선을 그었다. 대선 후보 선출 시기에 대해서도 “대선을 준비하는 기간이 6개월은 돼야 한다”며 “너무 짧으면 허둥대다가 대선을 맞고 그렇게 해서 된다 하더라고 국민을 충분히 안심시킬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했다. 이명박 전 시장은 대선 6개월 전에 후보를 선정하도록 한 것은 너무 빠르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전대 과정에서 불거진 ‘대리전·색깔론 논쟁’과 관련, “분노도 슬픔도 미움도 마음속에 다 묻고 민심이 원하는 대로 가겠다”고 했지만 곧 “한나라당이 그런 모습으로 자기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풍토로는 국민들에게 정권을 달라고 말할 수 없다”며 “10년을 같이 일했던 동지에게 표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느닷없이 색깔론을 이야기 하고 표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멀쩡한 사람을 대리전에 창출해내는 건 국민들이 볼 때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라고 ‘섭섭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이 전 서울시장이 조속한 당무 복귀를 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사실 최고위원직은 그만두고 조용히 백의종군하겠다고 생각했다”며 “이 전 시장 측근인 정두언 의원이 ‘지금 개인의 감정으로 정치를 할 때가 아니지 않느냐. 국민들이 이재오라는 정치인에게 보여준 표가 있으니 그만두지 않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