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 내부의 개헌론 ‘군불때기’가 정치권을 예민하게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최근 4년 대통령 중임제만을 도입하는 내용의 ‘원 포인트 개헌론’을 주장한 데 이어, 임채정 국회의장도 17일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개헌 논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임 의장은 지난달 19일 취임 일성으로 이미 한 차례 개헌 논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여권의 개헌론 ‘군불때기’ 의도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권의 개헌론 ‘군불때기’ 의도에 대해 정치권은 일단 정부와 열린당이 처한 현재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재보선 지방선거 등 잇단 선거에서의 참패와 10%대에 머물고 있는 당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국정운영 지지도 등 내년 대선을 앞둔 여권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위기 타개를 위한 카드도 마땅찮은 상황에서 ‘해 볼 수 있는 수는 다 동원하자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그러다가 하나라도 걸리면 다행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잇단 선거 참패를 통해 열린당에 심판이 내려진 상황에서 내년 대선을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 차기대선 주자 등이 함께 갈 수 있겠느냐는 전망가지 나오는 상황에서 정략적이라는 비난이 일 수 있는 인위적인 정계개편 시도보다는, 정계개편의 모멘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개헌 논의 제기가 명분상으로 그럴 듯하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는 것이다. 

    당내 일각에서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 당 지지율은 물론 여권 내 대선 주자 문제 등을 봤을 때 뭐 하나 제대로 내세울게 있느냐”면서 “개헌 논의를 통해 여권에 일방적으로 따가운 국민의 시선을 돌리려는 측면도 감안되지 않았겠느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개헌 논의 제기는 여권 내 기대심리가 우선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개헌 논의 자체에 대한 시기적인 논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도저는 안 되는 상황에서 막연한 기대심리가 더 크게 반영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개헌 저지선인 국회의원 1/3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개헌 논의 자체를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론화가 생각만큼 쉽게 이뤄지겠느냐는 것이다. 개헌 논의 제기가 정국의 반전을 꾀하는 여권의 의도된 카드라기 보다는 여권의 막연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또 야당을 중심으로 한 또다른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권의 개헌 논의 제기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도 보인다. 제헌절 경축사 형식을 빌었지만 그간 꾸준히 개헌론 불지피기에 나섰던 여권인 데다, 이번에는 시기적으로도 한나라당의 7․11 전당대회 후유증과 맞물려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개헌논의의 여파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개헌 논의 제기를 덥썩 물었다가 여권의 의도에 예상치 못하게 말려들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내 지도부급 한 의원은 이날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한나라당 내부에서 전당대회 이후 나타난 앙금이 개헌 논의라는 극단적이 방향으로 흐를지도 모른다”면서 “박근혜 전 대표 체제 때에는 (개헌 논의에 대해) 통일된 목소리를 냈지만, 지금 당 내부에서 개헌 논의를 하자고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여권에서 나오는 개헌 논의가 한나라당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감을 표하기도 했다. 여권의 개헌론 제기는 ‘한나라당 흔들기’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이도저도, 뭘해도 안 되는 상황에서 한 가닥 기대감을 갖고 내던진 개헌 논의 제기를 한나라당이 덥썩 물지 정치권의 관심이 쏠린 모습이다. 한나라당이 개헌 논의에 들어서는 순간, 정치권은 급속한 혼란 속에 빠질 공산이 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