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우리 그러지 말고 합의 봅시다. 그 노동자 말이 일리가 있잖아요.’

    아킬레우스 씨의 아내는 아킬레우스 씨를 달래기 시작했다.

    ‘이 여편네가? 일리가 있긴 뭐가 일리가 있어?’

    ‘그 노동자 대푠가 하는 사람 말대로 하루에 돈 5만원 올려주고 적당히 합의를 봐요.’

    ‘안돼!’

    ‘왜요?’

    아킬레우스 씨는 속이 다 터질 것 같았다. 집에서 솥뚜껑 운전만 해서 도통 세상물정을 모르는 여편네였다. 평소 진보적인 남편이며 시민으로 자처하는 아킬레우스 씨이지만 이번 만큼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다.

    ‘이 여편네야! 남편이 안된다면 안된다는 줄 알지, 뭔 말이 많아!’

    ‘아유!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요. 사람 귀청 떨어지겠네?’

    ‘모르면 빨리 저리 가서 자빠져 자!’

    ‘왜 막말을 하고 그래요?’

    ‘자빠져 자라는 데 왜 지랄이야!’

    ‘아니 이 이가 미쳤나?’

    ‘뭐 미쳐?’

    ‘이 여편네가 정말!’

    아킬레우스 씨는 자기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는 것을 참았다. 손이 올라가는 것을 참지 않았다면 마누라 뺨을 칠 뻔 했다. 아킬레우스 씨는 집을 뛰쳐 나와 집 앞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돈 5만원을 그냥 올려 줘?

    아니야. 개새끼들. 하루에 돈 5만원 더 받자고 지랄을 해대는 걸 보면 돈 5만원 더 받아 처먹고 난 다음에 이런 저런 명목으로 돈 더 달라고 지랄할 새끼들이야. 단 돈 1원도 더 줄 수 없어.

    아킬레우스 씨의 머리에 그를 비웃는 노동자 대표입네 하는 자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껏해야 다섯 명 밖에 안되는 놈들이니 내일 당장 경찰을 불러다 가게에서 끌어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아킬레우스 씨는 파출소에 가서 그 일용직 노동자들을 신고했다. 그러자 경찰이 이렇게 말했다.

    ‘왠만하면 적당히 합의를 보시지요. 서로 좋은 일 아닙니까?’

    ‘아니오. 내 그 자식들을 끌어 내 버리겠소. 그 놈들이 시키는대로 해 줬다간 점점 요구의 수위를 높일 겁니다.’

    경찰은 아킬레우스 씨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경찰 두 사람이 아킬레우스 씨를 따라 나섰다. 노동자들을 아킬레우스 씨의 업소에서 밀어 낼 참이었다. 그래서 아킬레우스 씨와 경찰, 노동자들은 아킬레우스 씨의 가게에서 대면했다.

    ‘자, 이제 나가주십시오. 그리고 사장님은 이 분들에게 일한만큼은 노임을 주십시오.’

    ‘뭐요? 우린 못 나갑니다.’

    노동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왜요?’

    경찰이 되물었다.

    ‘우리도 말입니다. 여기서 며칠 투쟁하냐고 그만큼 일당 못 벌었습니다. 그거 보상해주십시오.’

    ‘뭐야? 이 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아킬레우스 씨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 저 그만하세요. 자, 여러분들 빨리 나가세요. 사장님이 여러분들 계좌로 일한만큼은 돈 드릴 겁니다.’

    ‘이거 왜 이럽니까? 아니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약자의 편을 들어야지. 일방적으로 사장 편을 들면 되는 거요?’

    ‘아니 우리가 무슨 사장 편을 들었다고 하는 겁니까?’

    ‘경찰이 하는 일이 뭐요?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것 아니오? 그런데 왜 남의 이해관계 다툼 현장에 끼어드는 겁니까? 노동 파업을 막는 게 경찰의 임무가 아니잖아요. 이것도 결국 제 3자 개입 아니오?’

    경찰은 끌끌 혀를 찼다.

    ‘자, 여러분들 급여 문제에 대해 불만이 있으시면 여러분들을 보낸 파견업체에 가서 항의하십시오. 여기 사장님은 여러분들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제 3자입니다.’

    ‘제 3자라고? 아니 그럼 제 3자가 왜 경찰을 데려와? 말도 안되는 이야기말고 어서 당신들이나 나가쇼. 우리는 여기 사장하고 담판을 지을라니까.’

    ‘아, 참 말 안 통하는 양반들이네. 우리 경찰들도 피곤합니다. 어여 좋게 끝냅시다.’

    ‘어허! 이봐 당신, 사장한테 돈이라고 받아 먹었어. 왜 사장 편만 들고 그래. 우리도 세금 내는 국민이야!’

    ‘거참 안되겠군. 이봐 이 순경, 본서에 전화해서 더 오라고 그래.’

    ‘어, 이제 힘으로 해보자는 거구나. 그래 한번 해보자.’

    노동자 5명은 경찰과 아킬레우스 사장을 가게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뭐야 뭐!’

    경찰과 아킬레우스 사장, 노동자들 간 난투극이 벌어지자 동네 주민들이 다 몰려나와 그 희한한 광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게 뭔 망신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