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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4일자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은 3일 경제부총리에 권오규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에 김병준 전 정책실장을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김 전 실장은 부동산 ‘세금폭탄’ 정책으로 민심을 등 돌리게 한 책임자”라며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자 개각을 앞당겨 발표했다.
이번 개각으로 취임 이래 “시장만능주의에 매몰된 경제관료들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정권 분위기에 짓눌려 경제팀 수장으로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경제부총리, “산업 요구에 맞게 경쟁의 원리로 교육을 개혁하겠다”던 취임 때의 의욕을 ‘경쟁은 죄악이다’는 정권 코드에 맞춰 차례차례, 그것도 180도 반대 방향으로 뒤집었던 교육부총리도 함께 물러났다.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가 자신의 평소 소신을 바꿔 나라 일을 그르쳤다면 김 교육부총리 내정자는 자신의 신념대로 나라를 멍들게 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국민을 괴롭혔던 인물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의 신념과 대통령의 소신에 자기를 일치시킨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여당이 전멸한 지방선거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고도 그가 계속 요직을 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동지’라고 부른다는 386 참모들은 정권 출범 후 지난 3년 반 동안 한 사람이 많게는 7개까지 청와대 비서관직을 돌아가면서 맡았다. 그들 역시 맹종적 충성심의 대가를 자리로 받은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자리를 무슨 사조직의 감투 돌리듯 이렇게 충성심의 대가로 마구 돌려도 되는 일인가. 정말로 건국 이래 전대미문의 일이 대한민국 권력의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낮의 어둠’이란 말보다 지금 이 나라 권부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단어가 없을 듯하다.
대통령은 지방선거 참패후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5·31 지방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앞으로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겠다”고 했던 게 일주일도 안 됐다. 대통령은 또 “당의 어려운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당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랬던 대통령이 유권자가 선거를 통해 심판한 실패한 경제정책의 책임자, 여당 대다수 의원들이 부적격자로 꼽는 인물에게 다시 이 나라 교육을 맡겼다. 이것이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고, 당에 책임을 지는 처사인가.
대통령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임기 5년의 왕을 선출한 적이 없다. 임기 5년의 대통령을 뽑았을 뿐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아무리 임기 동안이라도 헌법의 정신 아래 국민의 뜻을 살피며 국정을 운영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의 인사는 왕의 인사다. 대통령이 ‘내 뜻은 내 뜻’이고 ‘국민의 뜻은 국민의 뜻’일 뿐이라고 나온다면 국민도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정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