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5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평화센터(DJ센터)’가 6·15남북공동선언 6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8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주최한 만찬 행사의 비용을 경제단체에 요구해 총 1억 원을 받았다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에 각각 요구했는데 전경련은 ‘정치적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거절했고 나머지 두 단체는 ‘남북 경협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5000만 원씩을 주었다는 것이다.

    행사 때면 재계에 손 벌리는 행태가 권위주의 시절과 닮았다. DJ센터 측은 “회비를 못 낸 참석자들이 있어서”라고 했지만 돈이 모자라면 조촐하게 치르면 될 일이다. 꼭 전현직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을 모아놓고 일류 호텔에서 비싼 저녁을 먹어야 했나. “방북을 앞둔 DJ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하고 싶어 그랬다”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국민은 혼란스럽다. 광주에선 6·15선언 기념행사가 ‘반미(反美)의 굿판’으로 변하고 있는데 DJ는 그런 6·15선언을 위해 친미(親美) 보수라 할 경제계에 손을 벌린 꼴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광주의 6·15’와 ‘DJ의 6·15’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6·15선언 행사가 반미투쟁과 친북(親北) 연대의 장(場)이 됐다면 어떤 형태로든 DJ의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6·15선언 자체도 DJ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인적으로 맺은 합의에 불과하다. 국회 동의를 받은 것도 아니다. ‘DJ의 연합제와 북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했다’는 내용부터 냉정히 따져 봐야 할 시점이다.

    ‘낮은 단계 연방제’는 북한이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두려움을 느끼고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막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이다. 북이 1992년 발효된, 완성도가 훨씬 높은 남북기본합의서는 철저히 외면하면서 6·15선언에만 매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6·15선언이 격렬한 반미투쟁의 이론적 도구가 되고 있는데도 DJ가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이런 혼란을 야기한 당사자로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