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로이의 목마'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을 인수위원장으로 임명하자 오씨가 배신했다는 등 많은 논의가 일고 있다. 일부에선 오세훈 씨를 소환하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나는 지난 5월17일자 칼럼 ‘오세훈과 한국의 보수’에서 오씨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지명된 것이 한국 보수의 실패라고 단정하고, 오씨가 ‘토로이의 목마’가 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었다.
불행하게도 나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맹형규씨는 오씨의 환경운동연합 소속 문제를 정면으로 들고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이회창씨가 그러했듯이 맹형규씨도 좌파를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오씨는 후보가 됐고 시장에 당선됐으며, 자기를 찍은 보수성향의 서울 시민을 배반했다.이회창의 실패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나 ? 나는 이것이 거의 전적으로 이회창씨의 책임으로 본다. 이회창씨는 한나라당을 새롭게 만들어서 집권하겠다면서 원희룡, 오세훈, 이미경 같은 ‘문제 인물’을 대거 영입했다. 이회창씨의 측근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젊은 유권자의 표를 끌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회창씨는 두 차례 선거에서 이념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오히려 좌성향 세력을 포용할 수 있음을 보여 주어야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그리고 두 번 선거에서 이회창씨는 패배했다. 조갑제씨 주장대로 이회창씨가 두 차례 대선에서 이념문제를 제기했더라면 과연 승리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더 큰 문제는 선거 패배 다음에 일어났다. 선거에 지고 나니 ‘차떼기’니 뭐니 해서 이회창씨 측근들은 된서리를 맞았고, 이회창씨가 끌어온 정체성이 불분명한 원씨 등의 몸값만 올라갔다. 이미경씨는 아예 열린우리당으로 소속을 옮겼다. 그러다 보니 한나라당의 차세대의 색깔이 좌로 가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세훈 사태’가 잉태된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는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이회창씨는 5-6공 시절에 가장 진보적인 대법관이었다. 이회창씨가 내린 판결 중에 한국전기통신공사 교환원 조기정년 사건이 있다. 대부분 여성인 교환원들에 대한 조기정년이 부당하다는 소송이 제기되자 여성단체들이 원고를 지지하고 나섰는데, 이회창씨가 주재한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를 복직시키도록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기술발전에 따라 남아도는 교환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에 관한 것으로, 이회창씨의 판결이 오히려 단견이었다. 사람의 생각은 변하기도 하고 발전하기도 하지만, 이 판결은 이회창씨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한다.
한나라당은 ‘식물정당'
최열씨를 인수위원장으로 임명해서 야기된 ‘오세훈 사태’는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트로이의 목마’ 사건이다. 어느 면으로 보나 좌파 성향이 강한 최씨, 그것도 낙선운동이란 이름을 내걸고 한나라당을 괴롭힌 최씨가 서울시 인수위원장이 되어도 한나라당은 말 한마디 없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목마 속에 숨어 있던 병사들에 의해 한나라당이 아예 점거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한나라당은 정체성을 상실한 ‘식물정당’이 된지 오래 됐다. 한나라당은 평택에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는 사태가 진행되고 있어도 그것을 남의 일 보듯 했다. 전여옥 등 몇몇 의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한나라당의 대권주자인 이명박씨도 북한인권, 사학법 개정, 평택 사태 등에 대해 한마디 한 적이 없다. 이씨는 자기의 시장 봉급을 ‘아름다운 재단’에 모두 기증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참여연대를 세운 박원순씨가 운영하는 이 재단의 성향에 대해선 생각해 볼 점이 많다.
기로에 선 한나라당
5․31 선거는 한나라당의 승리가 아니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눈감고 2번을 찍음으로써 노무현 정부를 심판한 것이지 한나라당을 지지한 것이 아니다. 한강에 오세훈을 찍은 것을 후회해서 잘라 버린 손가락이 둥둥 떠다닌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제 한나라당은 분열 직전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한나라당이 분열되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 만일에 한나라당이 최열과 박원순 같은 좌파와 길을 같이 간다면 새로운 우파 정당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이상돈 객원칼럼니스트/중앙대 법학과 교수]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