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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1일자 오피니언면에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쓴 시론 <5·31 지방선거―'역사적' 심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제4대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에도 뒤지는 제3당으로 전락했다. 특히 전남·광주 완패에 이어 정동영 전(前) 당의장의 연고지인 전북에서마저 기초단체장 당선자 수에서 민주당에 4:5로 판정패하고 도지사 한 명을 턱걸이로 당선시키는 데 그쳤다. 이것은 여당이 호남 아성의 붕괴로 정당으로서의 존립기반마저 상실하기에 이른 파멸적 참패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여권의 실정(失政)에 대한 단순한 ‘정치적 응징’을 넘어서는 헌정사상 초유의 ‘역사적 심판’으로서 국민의 손으로 직접 정권을 청산하려는 ‘제2의 탄핵’이요, 4·19혁명 직후 실시된 총선 수준의 ‘혁명적 심판’이다. 이것은 국민이 많은 잘못을 범해 온 야당을 탓하기보다 여당을 참담하게 궤멸시킨 만큼 더욱 ‘혁명적’인 것이다.
혹자들은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탄핵찬성 정당들을 버리고 여당을 살려준 민심이 이번에는 180도 바뀌어 여당을 초토화하고 야당을 띄워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의 탄핵의지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해석은 옳다고 볼 수 없다. 17대 총선은 ‘의회주권’에 대항하는 탄핵반대 소수집단의 ‘불법’ 촛불집회와 이를 연일 24시간 방영한 TV방송국들의 ‘영상테러’로 조성된 공포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었다. 따라서 총선민심은 이 공포분위기 속에서 심각하게 왜곡되고 훼손되었다. 그럼에도 군소정당을 포함한 탄핵찬성 정당들의 지역구 득표율 합계(53.8%)는 열린우리당(41.9%)보다 11.9%나 높았고 여기에 (‘대통령도 잘못했고 국회도 잘못했다’는) 양비론(兩非論)을 편 민노당 득표율(4.3%)을 더해도 7.6%나 앞섰다. 비례의석 투표에서도 탄핵지지 정당들의 득표율 합계(48.7%)는 열린우리당(38.3%)보다 10.4%나 많았다. 게다가 40%에 달한 총선불참자 중 공포분위기에 주눅 들어 불참한 수많은 탄핵지지자와 (당선무효가 선고된) 여당의 불법당선자 6명을 고려하면, 탄핵찬성 유권자 수는 총선 당시에도 탄핵반대 유권자를 현격히 압도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총선은 여당이 국회의석에서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고, 촛불·방송 테러와 선거결과에 위축된 헌법재판관들은 총선민심을 오해하여 (대통령의 ‘직무집행에서의 위헌·위법행위’를 확인했으면서도) ‘국민의 여망’을 들어 탄핵소추를 기각하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탄핵지지 민심은 이후 내연(內燃)하며 갈수록 더욱 확산되고 강화되어 오다가 연이은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의 과반의석을 무너뜨리는 일종의 ‘긴급조치’로 일단 정국을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바꿔놓았다. 이번의 혁명적 선거민심도 당시의 공포분위기에 대한 분노와 탄핵좌절의 회한(悔恨) 속에서 증폭되어온 탄핵민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도 제4대 지방선거 결과는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제치고 국민이 직접 선고한 ‘제2의 탄핵’인 것이다. 이것은 ‘양비론’으로 탄핵을 방해했던 민노당이 작년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에 1석을 잃고 제4당으로 전락한 데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여당과 함께 동반패배를 한 것으로 방증(傍證)된다.
따라서 혹자가 여권에 대오각성으로 선거민심을 수용하는 국정운영을 해줄 것을 주문한다면, 이는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국민의 ‘혁명적 선거민심’을 몰각한 안이한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사적’ 심판의지를 참으로 존중한다면, 여당은 마땅히 당을 자진 해산해야 할 것이고, 대통령은 ‘창당 초심’에 대한 언명을 거두고 특단의 조치를 단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지난 세월 왜곡당해 온 여론의 스펙트럼을 제대로 반영하는 정국구도가 창출될 수 있도록 정계대개편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도리다. 이미 국민의 심판이 끝난 여권이 부질없는 권력욕으로 이 길을 막는다면 정치지형은 저들 입맛대로 국민여론을 체계적으로 찌그러뜨리는 반민주적 정치판으로 남을 것이다. 결과는 국정파탄의 연장과 ‘3류국가’로의 전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