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 <블루칩 '한명숙 대통형 후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강금실은 그들의 표변과 비정함에 경악했을 것이다. 정동영, 김근태, 김부겸…. 이들은 불과 두달반 전인 당 의장 경선 때 “내가 강금실을 영입할 수 있다”고 외치며 ‘강금실 전당대회’를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강금실의 지지도 정체가 출구를 찾지 못하자 이들의 계산법이 달라졌다. 강금실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속속 빠져나가고 있는 전통적 지지세력을 잡을 수 있는 방안이 더 시급했다. 지난 2일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바로 그날, 서울시장 경선 투표율을 불과 4.8%로 만들면서까지 날치기 난리판을 밀어붙였다. 정동영은 날치기를 주도한 김한길을 국회로 찾아가 둘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았다.

    입당 하루 만에 ‘신상문제 중대 하자’라는 청천벽력의 낙인에다가 입당 거부까지 당한 김태환 제주지사는 더 황당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 핵심세력의 정체성이란 본질적으로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발·돌출·표리부동할 수 있는 유연성이다.

    이런 잣대로 노 대통령이 5·31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추론해보는 것은 5·31 이후 그의 모든 시나리오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 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지방선거 결과는 어차피 4년 전과 비슷한 패턴으로 한나라당 압승·열린우리당 참패로 끝날 것으로 봤을 것이다. 그렇다해서 초조해할 이유가 없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열린우리당이 참패한다 해도 당에 대한 장악력을 잃어 레임덕에 시달릴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 적어도 절반이라도 이기면 당내 대권 후보들이 노 대통령을 공격하며 차별화로 나갈 수 있다. 현재 판세에서 그럴 가능성은 단 1%도 없다. 열린우리당은 당내 대권주자들이 추풍낙엽처럼 퇴장하며 주인없는 나룻배 신세가 된다. 5·31 완패 이후 노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정계개편이나 개헌을 추진하거나 독자적 기반으로 대권 후보를 따내겠다는 인물은 공상가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에게 제발 탈당하지 말고 구원투수가 되어 정계개편이나 개헌을 주도해달라고 간청하는 희한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공격을 해오면 노 대통령이 홧김에 탈당할 것이라는 관측은 단견이다. 노 대통령은 퇴임후 안전 때문에 자신의 기획으로 차기 대통령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파·친북·반미를 포함한 전통적 지지세력만으로 정권 재창출이 가능할 것인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5·31 이후를 미리 내다본 노 대통령으로서는 ‘한명숙 국무총리’ 기용을 놓고 장고(長考)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연 한명숙이 대통령후보로 나설 경우 한나라당을 꺾을 수 있을 것인지, 혹시 ‘대통령 한명숙’이 배신할 인물은 아닌지.

    노 대통령은 ‘복병 카드’가 아니면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이인제 뒤에서 숨어 있다가 나타난 노무현. 정동영·김근태 뒤에 숨어 있는 복병으로 노 대통령은 유시민 외에도 한명숙이라는 카드를 한 장 더 갖고 싶을 것이다. 보수·우익표를 잠식해 외연 확대를 할 수 있는 후보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명숙 카드는 노 대통령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문제를 꺼낼 때 동원했던 ‘좌파 신자유주의 정권론’과 같다. 한명숙은 좌파 세력에겐 좌파라고, 보수·우파에겐 신자유주의자로 포장될 수 있다. ‘뉴 라이트 후보’로의 위장도 가능하다. 한 총리가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 보수·우파 후보와 맞붙는 구도가 되면 한나라당이 인사청문회 때 맥을 못추었던 것처럼 선거 내내 손도 못쓰는 갑갑한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한명숙과 유시민 복병 카드조차 대선 필패로 보이면 고건 카드를 꺼내 정계개편을 하려하거나, 민주당과 민노당에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좋으냐”고 설득해 내각제 개헌으로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으려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9일 몽골 방문중 조건없는 남북정상회담을 돌연 제의한 것도 국내 정치용 승부수로 보인다. ‘반전 카드’를 총동원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 압승한다 해도 자만하면 그것은 집권을 향한 축배가 아니라 독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