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정치부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양상훈 · 정치부장 지난 23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경기도가 주최한 일본 기업 CEO 만찬장. 일본의 세계적 LCD 관련 업체인 호야(HOYA)의 스즈키 사장은 “손학규 지사가 귀찮게 해서 경기도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손 지사는 이 회사를 세 번 찾아간 끝에 6000만 달러 투자를 이끌어냈다.

TFT-LCD 관련 알박사(社)의 나카무라 사장은 “폭탄주로 건배 제의를 하고 싶지만”이라고 했다. 손 지사는 외자유치 협상때 상대방이 안보 불안 문제를 얘기하면 “한국에선 매일 밤 전국에서 폭탄이 만들어진다”며 폭탄주 시범을 보였다. 나카무라 사장도 그 시범을 본 사람이다.

손 지사의 임기 3년8개월 만인 오는 4월, 경기도가 외자유치 100건을 달성한다. 거의 모두 반도체·LCD·자동차부품 등 첨단 산업들이다. 돈으로는 140억 달러, 일자리로는 3만개를 새로 만들었다. 간접 고용까지 합치면 일자리는 8만개에 달한다. 지방자치단체로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경기도가 유리한 여건이라 해도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손 지사의 뒤엔 경기도의 젊은 공무원들이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투자진흥과를 ‘찍새’, 투자정책·입지 담당 팀들을 ‘딱새’라 부르며 동분서주했다. 찍새가 외국기업을 찍어 데려오면, 딱새가 행정지원을 제공했다. 찍새들의 해외 출장 기본 원칙은 1시(市)1박(泊). 한 도시에 하루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유럽 열흘 출장에 비행기 갈아타기 12회, 미국 무박(無泊) 3일 출장 등 고행길이었다.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 만든 김밥을 외국 공항에서 빼앗기고, 하루 잠은 평균 3시간이었다.

손 지사의 출장을 따라갔던 한 도 의원은 새벽 5시에 잠이 깨 옆방 공무원들이 밤을 새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귀국 비행기에서 이들 찍새들이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모습을 보고 숙연해졌다는 사람도 있다.

국내는 딱새들의 몫이었다. LG필립스가 LCD 공장 부지로 경기도와 대만을 놓고 검토 중일 때였다. 밤샘 회의 도중 오전 1시에 양쪽 공무원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대만에선 받지 않았고, 경기도 딱새들은 전화를 받았다. 차이는 이런 곳에서 벌어졌다.

일본·대만 업체의 추격을 받고 있던 LG필립스는 4년 걸리는 50만평 파주 공단 조성을 2년 만에 해놓으라고 독촉했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 11월 땅에서 문화재가 나왔다. 곧 땅이 얼 상황이었다. 경기도는 4000평 전체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 온풍기를 돌려 땅이 어는 것을 막으면서 문화재 발굴을 끝내고 공단을 밀어붙였다.

세계1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델파이는 진입도로 개설이 어려워 용인 연구소 건립을 포기하려 했다. 손 지사는 델파이 회장의 방한 두 달 전에 경기도 예산으로 길을 냈다. 델파이는 투자를 했고, 손 지사가 미국에 가자 연봉이 한 시간에 2000만원인 회장이 다른 약속을 취소하고 나왔다. 경기도가 이렇게 기업용 길을 내는 데 쓴 돈은 11곳에 600억원이 넘는다.

경기도는 집요한 설득 끝에 일본 스미토모 화학과 (주)농심의 토지 맞교환을 성공시켰다. 스미토모 회장은 “우리 회사 150년 역사에서 정부로부터 제대로 도움을 받은 적이 없는데 한국 지방정부가 처음으로 도와주었다”고 말했다. 손 지사와 경기도 찍새·딱새들의 활동은 외국에 입 소문이 나서 이제는 A외국기업이 B외국기업을 소개해주는 일도 생기고 있다. 23일 경기도 주최 일본기업 만찬엔 초청 기업 36개 중 34개의 CEO 93명이 참석했다.

2004년 손 지사와 미국 디트로이트를 갔던 한 인사는 우연히 한국 교포를 만났다. “외자유치 하러 왔다”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수고한다”가 아니라 “조심하라”는 싸늘한 경고였다. “여기서 일자리 뺏어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외자유치는 전쟁이다. 30만 달러를 유치하면 일자리 하나가 생긴다. 일자리 하나가 한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고 아이들을 키운다. 정치 문제를 떠나서 손 지사와 경기도의 찍새·딱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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