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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서울대학교 박효종 교수(정치학)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과의 인터넷대화’에서 밝힌 상위 20%에 대한 세금 언급을 들으면서 국가공동체와 국민에 대한 참여정부의 인식이 한심한 수준을 넘어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참여정부가 세금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납세자 개인으로서는 피땀 흘려 번 돈인데, 정부가 툭하면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하니 국민을 봉으로 아는 것인지 혹은 마르지 않는 샘물로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아니면 국정을 담당하고 있는 386세대야말로 돈을 벌어보지 않아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노 대통령은 세금의 대부분을 내는 사람은 상위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어차피 세금과는 무관한데 이 20%에게서 세금을 더 걷는다고 온 국민이 나서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언론의 오보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면,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을 상위 20%와 나머지 80%로 갈라놓고 상위 20%에게서만 세금을 더 걷을 것이니 손해 볼 것 없는 80%의 국민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말과 같지 않은가.계층간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이런 발언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음을 일깨워 주는 말인가. 어차피 20%는 기득권층으로, 정부 여당에 투표를 하지 않을 테니 적대세력으로 돌려 짜낼 만큼 짜내고 80%만을 우호세력으로 삼겠다는 뜻인가. 혹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상적인 국정운영보다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의 지지와 성원만을 전제로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뜻인가.
양극화 해소를 빌미로 계층간 대립을 조장해 선거에 승리하겠다는 발상이라면, 이 정부의 자기 특권적 발상일 뿐이다. 국민이 5 년간 국정 책임세력으로 뽑아준 것은 그동안 그 자리에서 국리민복을 위한 ‘통합적 접근’을 하라는 것이지 ‘편파적 접근’을 하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선출된 권력’이 ‘선출될 권력’을 위해 분열과 갈등을 극대화하는 정략적 사고를 하는 것은 권력의 정도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정책은 ‘일부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지하철파업을 하는 노조원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공공성과 불편부당성에 호소하게 마련이다. 막무가내로 자신들의 봉급이 올라야 한다는 이기주의적 논리보다는 자신들의 복지 수준이 제고돼야 시민들의 발인 지하철이 안전 운행을 할 수 있다는 공공성의 논리가 눈에 띈다. 공공성에 호소할 때 도덕적 정당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대통령이 ‘100% 공동체가꾸기’보다 ‘80% 공동체가꾸기’에 열을 내며, 증세정책을 추진하면서 20% 계층을 적대시하다니…. 그렇다면 청와대가 비겁하고 이 정권이 비겁한 것이다. 조금 더 당당하게, 양극화 해소에 왜 증세가 필요한지 또 그 짐을 우리 모두가 어떻게 공평하게 분담해야 하는지를 왜 말하지 못하는가. 오히려 기득권층과 고소득층에게만 고통을 줄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보고 즐겨라”는 식의 태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국정철학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참여정부가 분열을 즐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바로 이런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청와대에서 화해와 통합, 고통분담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책임전가, 고통전담, 낙인찍는 소리만이 들리니 우려가 앞선다. 상위 20%를 징벌하는 포퓰리즘 방식으로 양극화 해소를 추진하는 방식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남미의 역사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국민’에 20%는 빠져 있고 80%만 있는 인터넷대화, 그것은 ‘국민과의 대화’가 될 수 없다. 차라리 ‘80%와의 대화’라고 했어야 옳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