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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사람 주머니 털어봐야 빈곤만 평등해져

입력 2006-02-28 09:49 | 수정 2006-02-28 11:31
중앙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 '글로벌아이'란에 칼럼니스트 변상근씨가 쓴 '정치로 양극화 해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양극화 현상, 특히 경제적 양극화(economic polarization)는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고,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화가 본격화하면서 국가 간에, 또 한 국가 내의 부문 간, 산업 간, 계층 간에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세계적 경쟁 격화와 지식정보화, 기술 급변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 간에 격차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몇 가지 추세적 흐름이 이를 대변한다. 첫째 기술 발전에 따라 고용 없는 성장과 과소고용이 고착화하는 경향이다. 지난해 세계경제는 4.3% 성장했지만 평균 실업률은 6.3%에 그대로 머물렀다. 둘째 생산성은 올라가도 국민소득 중 근로자 몫인 임금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노동자의 국제이동으로 저임노동력의 공급은 되레 늘고 있다. 셋째 봉급자 간에도 봉급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상위 10%가 전체 봉급의 절반을 가져간다. 상위 1%의 봉급이 하위 50%의 합계보다 더 많다. 승자 독식의 '수퍼스타 프리미엄'이다. 잘나가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에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넷째 잘나가는 쪽은 선순환으로 더욱 잘되고, 못한 쪽은 악순환으로 더욱 나빠져 국가 간 격차 역시 갈수록 벌어진다. 가장 잘사는 나라와 가장 못사는 나라 간의 평균 생활수준은 1세기 전 10 대 1이었으나 지금은 75 대 1, 2050년에는 150 대 1로 격차가 벌어질 전망이다.

세계경제는 지금 19세기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대변혁을 겪고 있다. 증기기관차가 산업혁명의 엔진이었다면 인터넷 검색엔진은 지식정보화혁명의 엔진이다. '나는 검색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시대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생기는 양극화 문제는 글로벌한 시각에서, 정치논리가 아닌 냉철한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경제구조의 지각변동을 예의주시하면서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는 것만큼 화급한 일도 없다.

노무현 정부는 민생이 어려운 근본원인으로 양극화를 지목하고 남은 2년 임기 동안 양극화와의 '전쟁'을 불사하고 나섰다. 양극화를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규정함은 물론 사회교육 등 모든 문제까지 양극화 구도로 접근할 기세다. 우리의 양극화가 과연 '시한폭탄'으로 느껴질 정도로 심각한 것인가.

우리의 세계화는 경제부문에서 123개국 중 63위로 아직도 중위권이다. 소득 간 격차도 상위 20% 계층 소득이 하위 20% 계층 소득의 5.4배로 미국의 15배, 중국의 11배, 영국.호주의 7배에 비하면 극심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경우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간의 양극화라기보다는 잘사는 사람의 소득은 별로 늘지 않고 중산층 붕괴와 빈곤화로 못사는 사람이 더 살기 어려워지는 데 문제가 있다. 기업 부문 역시 정작 잘나가는 기업의 숫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교육부문도 양극화라기보다는 공교육 붕괴와 하향평준화가 더 문제다. 양극화는 본질적으로 해소가 불가능하며 완화가 고작이다. 잘나가는 쪽은 더 잘나가게 하고 바닥 쪽은 사회안전망과 성장지원형 복지제도로 떠받쳐 주는 일이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이다. 선진국 정부들은 양극화나 격차해소가 아닌 빈곤층 지원, 저소득층 소득 증대 쪽으로 접근한다. 격차심화로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중국마저 우선 부자들부터 더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선부론(先富論)을 견지하는 세상이다. 앞서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거나 주머니를 터는 식의 격차해소나 포퓰리스트적 평등화의 '정치'는 우리 모두의 빈곤화를 자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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