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 '시사풍향계'란에 이창무 한남대 교수(형사사법학 전공)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홍콩 WTO 각료회의 반대 시위현장에서 현지 경찰과 우리나라 원정 시위대가 몸싸움 벌이는 걸 뉴스를 통해 지켜보면서 내내 입맛이 썼다. 한동안 3보1배 등 평화시위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주는 듯했던 우리나라 시위대였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집회 시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중요한 한 축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며, 따라서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고,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엄격한 법적 요건에 의해 제한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며칠 전 경찰청 자문기구인 인권수호위원회가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 사용 방지를 강조하고,이에 따라 경찰청이 과잉진압의 책임을 물어 서울경찰청 기동단장을 직위해제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경찰의 팔과 다리만 묶는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 필자가 우리나라 집회시위와 관련해 경찰, 집회시위 주최자, 일반시민들 이렇게 세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 조사한 결과에서도 집회 시위 문제는 결코 경찰만의 개선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집회시위는 원칙적으로 신고제이다. 따라서 주최자는 신고서에 작성한 원칙들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조사결과, 이와 같은 신고사항의 준수에 대해 경찰관과 시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집회시위를 주최하는 사람들조차 이러한 신고조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답변을 보였다. 또 경찰통제를 제대로 준수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일반시민의 절반 이상(56%)이 집회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경찰의 통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특히 불과 20.4%의 시민만이 집회시위가 평화적으로 열린다고 응답, 집회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시각이 곱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집회시위의 피해발생 원인이 경찰의 과잉대응 때문이라는 질문에 대해 일반시민은 29.8%만이 “그렇다”고 동의했다. 오히려 일반시민의 54.4%는 주최 측의 불법적 집회시위가 물리적 충돌을 불러일으킨다고 응답함으로써 주최 측의 불법적 집회시위가 경찰의 과잉대응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방식에 대해서도 일반시민 응답자의 절반가량(46.5%)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답변을 하고 있다. 

    따라서 집회시위로 발생하는 많은 피해와 위험은 주최자와 경찰 어느 한쪽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신고조항 위반, 경찰통제 불응 등 주최자의 원인제공과 이에 대한 경찰의 비합리적 대응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발생하는 것으로 일반시민들은 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경찰은 물론 집회시위를 주최하고 참여하는 입장에서 각각 구체적인 개선 방안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들 사이에서 비교적 중립적 위치에 있는 시민의 역할이 보다 더 강조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집회시위 참가자들과 경찰 간의 불신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이 중심이 되는 ‘시위개최 심사위원회’의 설치나 ‘시민참관단 제도’의 활성화 같은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시위개최 심사위원회’는 NGO 등의 민간인과 관련 학계 및 법조계 인사,그리고 유관기관의 인사들로 구성하여 집회시위의 개최여부를 판단하는 제도이다. 특히 대규모 집회의 경우 일반시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심사위원회는 아니라 할지라도,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 각국에서도 법적 장치를 통해 대규모 집회시위를 통제하고 있다. 

    영국의 ‘공공질서법(Public Order Act)’ 제11조에서는 공공행진의 개최와 관련하여 심각한 대중적 혼란이나 재산에 대한 피해 또는 사회의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일정한 조건을 부과하거나, 공공장소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의 경우도 모든 집단 시위 및 행진이나 행렬, 그리고 도로상에서의 모든 집단행동은 사전에 신고해야 하며, 신고를 받은 행정청은 당해 집단행동이 질서를 문란하게 한다고 판단했을 때는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민참관단 제도’ 역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집회시위의 감시자라 할 수 있는 ‘시민참관단’은 집회시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이 집회시위의 주요한 관리자가 되면서 주최 측과 경찰의 상호 감시 이외에 위법·불법 행위의 채증활동을 수행할 수 있고, 불법행위자들에 대한 고발권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시위의 조기 정착에 매우 큰 몫을 담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건전한 집회시위문화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위개최 심사위원회’나 ‘시민참관단 제도’를 보다 활성화,집회시위의 관리에 있어 시민의 역할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