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학 관점에서 본 북핵협상-15) '평화' '통일' 명분 앞세워 서두르면 '대실패'
  • 비즈니스에서는 전격적으로 일을 해치우는 방식이 때로는 성공의 비결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협상에서는 반드시 상대방이 있고, 감춰진 이해도 있어 서두를 경우 속마음과 핵심 이해를 놓치기 쉽다.

    최근 우리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를 앞장서 풀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연설에 요구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 UN 제재를 우회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모습에서도 서두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UN의 경제제재는 사실 북핵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갖고 최고의 수단(Option) 중 하나이다. 북한의 절실한 이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경제 분야 요구에 대해 들어주고 싶지 않을 때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기준(legitimacy)을 이용할 수도 있다. 생색을 두 배로 낼 수도 있는 꽃놀이패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가 앞장서 우회로까지 찾겠다고 나서면 우리 책임이 되는 셈이다. 북핵 실험으로 촉발된 위기이므로 당연히 북한에 해법을 요구해야하고 우리로서는 그 중 하나를 쇼핑하듯 선택하며, 상응하는 무언가를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

    상대의 이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평화’나 ‘통일’이라는 좋은 명분을 갖고 추진했으나, 서두르는 바람에 대실패가 되어, 협상학에서 단골로 소개되는 두 가지 사례를 보자.

    먼저 ‘평화’ 조성에 급했던 2차 대전 직전의 ‘뮌헨협상’이다. 1938년 뮌헨에서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은 독일 히틀러에게 체코의 수데텐 지역을 지배를 성급히 인정해주고, 전쟁을 막았다며 평화협정을 맺고 왔다. 한동안은 영국민의 칭찬과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불과 1년도 안되어 독일의 진짜 이해인 유럽 침공이 발생하자 선전포고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미 전선은 독일이 순식간에 장악했다. 이로 인해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이라는 단어는 협상에서 ‘악당에게 속아 넘어가놓고 뭘 속았는지도 모르는 멍청이’ 또는 ‘순진한 이상주의자’를 의미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둘째, 예멘의 서두른 ‘통일’의 사례이다. 예멘은 아라비안나이트의 나라, 최근에는 제주도 난민 정도로 알려진 인구 약 3천만명의 국가이다. 우리처럼 남북으로 나뉘어 전면전과 분쟁이 60여년째 이어지고 있는 나라이자 72년 만에 극적으로 남북통일을 한 점에서 독일 통일 보다 우리가 더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1918년 영국으로부터 북예멘이 독립한 이후 사회주의 남예멘과 전쟁과 대화를 반복하다가 1990년 5:5 권력분점 원칙을 토대로 상호 체제를 인정하며 통일을 했다. 그러나 종교 갈등과 권력 분배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며 남예멘이 재독립을 선언했고, 1994년 다시 남북 내전이 시작되어 지금도 분쟁과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정리해보면 정부의 1년 전에 비해 평화가 조성됐다는 주장은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2차 대전 때 영국-독일, 소련-독일 평화조약, 1차 대전 직후 윌슨 평화조약과 훨씬 더올라가 로마시대 카르타고와 평화조약까지 공통점 하나는 무엇일까? 독재자와 평화협정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상대의 진짜 어려운 점을 헤아려주되, 평화는 상호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월등히 앞서 있을 때 그 결과로 왔다는 역사를 기본 협상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협상 수단은 의외로 많다.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2차 북미정삼회담, 이를 서두르는 트럼프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의 입장도 우리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대비하되 무엇보다 우리의 패를 앞장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권신일 前허드슨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