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탈북민 출신 김명성 조선일보 기자의 남북회담 취재를 못하게 한 것은 언론의 자유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가적 체통을 몰각한 수치스러운 처사였다. 그리고 탈북민에 대한 차별행위-따라서 헌법위반 행위였다.

     이러다간 북한이 싫어할 짓은 자진해서 안 하거나 못하게 하는 풍조가 점점 더 노골화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일부 집권당 의원들은 ‘납북자’란 용어도 ‘실종자’로 바꾸라는 법안까지 준비했었다. 북한이 싫어하는 언동을 일괄 ‘극우-수구-냉전-꼴통’으로 규정하고, 이를 반(反)통일-반(反)평화로 매도하는 사태도 더 심해질 수 있다.

      리선권이란 북측 대표의 언사는 자못 고압적이고 무례하고 큰소리 땅땅 치는 식이다.
    반면에 조명균 통일부장관의 언사는 “말씀 주신대로...” 어쩌고 하는 식의 과공(過恭)이다.
    방북한 이재용 삼성부회장을 향해 북측 관계자는 “여러 가지로 유명하던데...”라며 면전에서 놀리다시피 했다. 남북회담이 진행되면서 국군포로, 북한인권, 전시납북자 같은 말들은 아예 사어(死語)가 되고 있다.

      어쩌자는 건가?

    개인의 존엄성과 개인의 기본권을 핵심가치로 삼는 자유민주주의와 그 정반대라 할 전체주의가 첨예하게 맞닿아있는 게 한반도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엔 이런 본질적 구도가 가려지면서 ‘민족’ ‘민족공조’ ‘자주’란 명분하에 자유민주 가치의 일방적 희석(稀釋)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김명성 기자의 취재권 박탈은 그런 정황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사건이다. 지금 탈북민들의 심경은 비통할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온 대한민국이 이런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니, 우린 어쩌란 말인가?” 참으로 기가 막히고 처연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나 했더니 기껏 이리 된다는 것인가?

      김명성 기자에 대한 당국의 부당한 처사는 결코 어물어물 넘길 일이 아니다. 언론계 전체, 정계 전체가 일어서 다뤄야 할 일이다. 자칭 ‘진보’는 물론 여기서 빠질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보수 언론계와 정계라도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박탈당하는 것을 그때마다 흐지부지 넘기다 보면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세상이 ‘혁명’ 돼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조명균 장관-, 그러는 거 아닌데...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 201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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