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건조 제한 우회…선체는 韓, 최종 조립은 美"지역 일자리 뺏긴다"…美 조선소 지역구 의원들이 장벽韓 기술력 인정에도 비자·예산·공급망 해결 과제
  • ▲ 부산 입항한 미 경항모 '복서'ⓒ연합뉴스.
    ▲ 부산 입항한 미 경항모 '복서'ⓒ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미국 군함 10척을 빠르게 건조해줄 수 있느냐"고 타진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국을 포함한 해외 기업과의 조선 협력 가능성을 거듭 시사했다. 노후화한 미 해군 함정을 신속히 대체하기 위해 한국의 조선 역량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하는 가운데, 선체와 주요 부품은 한국에서 제작하고 미국에서 최종 조립·시험하는 이른바 '분산형 조선'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부족한 군함 건조 역량을 한국의 생산능력으로 보완하면서도 자국 내 최종 건조 원칙을 일정 부분 지킬 수 있는 절충안이다.

    다만 군함의 해외 건조를 제한하는 미국 법규는 물론 현지 조선소 노동조합과 지역 정치권의 반발, 비자와 공급망 문제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6일(현지시간) 한국국제교류재단과 미국 랜드연구소가 워싱턴DC에서 개최한 '2026 한미 조선 협력 전략대화'에서는 한국에서 선박의 상당 부분을 제작하고 미국에서 최종 조립하는 분산형 조선 방안이 제시됐다.

    아미 베라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은 "선체와 그 밖의 많은 부분을 한국에서 건조할 수 있다"며 "선박의 상당 부분인 75~80%를 한국에서 건조하고 미국이 이를 구매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민감한 군사기술이 적용되는 장비는 미국에서 생산하되 선체와 주요 블록·부품을 한국에서 제작해 미국으로 가져온 뒤 최종 조립하는 방식이다.

    마이클 쿨터 한화디펜스USA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최대 항공우주·방산기업인 록히드마틴도 전투기의 모든 부품을 미국에서만 생산하지 않는다며 군함에도 분산 생산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브리트니 클레이턴 랜드대학원 교수도 "선박의 각 부분을 서로 다른 장소에서 제작하고 최종 조립과 시험은 미국에서 수행하는 방식으로 분산형 조선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부에서는 자국 조선업의 생산능력만으로 노후 함정을 신속히 교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베라 의원은 현재 미국의 조선 역량을 고려하면 모든 군함을 미국에서만 건조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미 해군이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에 전투함과 급유함 관련 정보요청서(RFI)를 보낸 것도 한국 조선업체의 설계·건조 역량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분산형 조선이 실제 군함 발주로 이어지기까지는 미국 내부의 법적·정치적 장벽을 넘어야 한다.

    미국은 번스-톨레프슨 조항 등을 통해 해군 함정과 주요 선체 구성품을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데 국방예산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미 하원에서는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전투함 계약에 해군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골든 수정안'도 논의되고 있다.

    수정안을 발의한 재러드 골든 민주당 하원의원의 지역구인 메인주에는 미 해군 구축함을 건조하는 배스 아이언 웍스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의 조선 협력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의회에서는 지역 일자리 보호를 앞세운 움직임이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특히 포럼 참석자들은 법 개정보다 현지 노동조합과 군함 조선소를 지역구에 둔 정치권의 반발이 더 복잡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라 의원은 "수출통제와 동맹국에 대한 기술 공유 문제는 의회에서 해결해야 할 세부 사항"이라면서도 "더 복잡한 문제는 노동조합과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는 조선소가 없어 필요한 곳에서 배를 만들자고 주장할 수 있지만, 대형 군함 조선소가 위치한 코네티컷이나 버지니아를 지역구로 둔 의원이라면 훨씬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코네티컷에는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제너럴다이내믹스 일렉트릭보트가 있고, 버지니아에는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만드는 뉴포트뉴스조선소가 있다.

    한국 조선소를 활용한 군함 건조가 미국 내 일자리 감소로 받아들여질 경우 해당 지역 정치인과 노조가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법 개정과 예산 승인을 거치더라도 현지 조선업 일자리를 둘러싼 지역구 정치를 다시 넘어야 하는 구조다.

    한국 기술인력의 미국 체류를 위한 비자 문제도 풀리지 않았다.

    한국 기업이 미국 조선소에 투자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한국 엔지니어와 숙련공이 현지에 장기간 체류하며 조선소 건설과 미국 노동자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베라 의원은 한국의 대미 투자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한국 엔지니어와 숙련공이 미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인 전문직을 대상으로 연간 최대 1만5000개의 별도 비자 쿼터를 신설하는 '파트너 위드 코리아 법안'과 한국을 호주와 같은 E-3 비자 대상에 포함하는 법안은 의회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결국 한미 조선 협력의 성패는 한국 조선업체의 기술력과 건조 능력보다 미국 내부의 법률과 예산, 노동조합, 지역 정치, 비자와 공급망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달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