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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하늘은 이상했다. 어디서부터 높고 어디까지 낮은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았다. 아침엔 너무 아득해서 숨이 막혔고 오후가 되면 둥근 해까지 내려와 머리 위로 눌러앉는 것 같았다.
그 아래에는 겨울을 위한 여름의 노동이 펼쳐지고 있었다. 도끼로 찍어내고 톱으로 가르는 마찰음과 이따금 뚝 하고 꺾이며 쓰러지는 나무들. 그 모든 소리가 합쳐져 자연을 찢는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족세대 여자들은 도끼보다 얇은 칼자루를 쥐고 가지치기 작업을 헸다.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고, 옷자락은 흙먼지에 눅눅히 젖었다. 그날 2분조 여자들의 얼굴엔 평소보다 밝은 기색이 돌았다.
장찌엔은 남의 기분까지 데려와 웃는 여자여서 오히려 평범해 보였다. 눈에 띄는 건 박해순과 민유정이었다. 둘은 종일 붙어 속삭이며 키득거렸다. 같은 분조의 남자를 마음에 품어서 그런지 미소도 시선도 닮았다.
박해순은 더 여유로워 보였다. 여자답게 남자를 품은 자부심까지 어깨에 실려 있었다. 비록 그녀의 그 언덕까진 닿지는 못했어도 민유정의 가슴 역시 한없이 설레었다. 자신을 위해 아팠고, 그게 소원이라고 말한 주둥이! 15호 수용자들에게 진짜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아파야 사랑이다. 그 아픔을 맹세해야 고백이다."
9분조의 도련님과 주둥이도 힘들지 않은 하루였다. 심지어 도련님은 건방질 정도였다. 최종배도 돌처럼 보였는지 그 앞에서 통나무를 내려놓고 빈 몸에 뒷짐을 지고 걸었다. 예전엔 최종배 면전에서 '기절'까지 했던 놈이 이젠 산책까지? 그 기억이 번뜩 떠올랐는지 최종배는 도련님을 향해 꽥 소리쳤다.
"야. 4번."
갇혀 사는 제 처지를 깜빡했는지 도련님의 돌아보는 시선도 느릿했다. 그 찰나 가까이서 큰 비명이 들렸다. 주둥이가 두 다리를 부여안고 땅바닥에서 팽이처럼 뱅뱅 돌고 있었다. 멀리서 고개를 들었던 검은손은 아무런 감흥 없이 다시 나뭇가지를 잘랐다. 주둥이의 비명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성진도 요즘엔 2분조에 자꾸 눈이 갔다. 김상미 때문이었다. 성진의 생각엔 그 뾰루지는 정말 짜증 나게 짓궂었다. 대단한 비밀이라고 알려준 건 고작 하나였다. 그날 밤 홍신영이 자기를 불러 내막을 캐물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날부터였다. 공동작업만 하면 성진이를 자꾸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또 뭐가 있는 것처럼 손동작으로 온갖 설명을 해댔다. 들키면 기합 당할 각오로 짐짓 찾아가 물으면 오히려 거꾸로 질문이 돌아왔다.
"그거 어떻게 됐어?"
그날도 상미는 열심히 수기신호를 보냈다. 도성진은 이를 앙다물고 중얼거렸다.
"아, 진짜 저 뾰루지... 오늘도 갔는데 뭐 없어봐라."
그는 주변을 흘끗 살피며 감시반의 시선을 조심스레 훑었다. 가족세대 작업장으로 향하려면 반드시 하나의 관문을 지나야 했다. 통나무 더미 위에 앉아 있는 최종배였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 작업하는 수용자들을 물끄러미 굽어보았다.
그 아래서는 주둥이가 꾀병으로 고통스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가수까지 달려와 걱정하며 살폈다. 예전 같았으면 최종배가 조명과 기관총이 걸린 감시탑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도성진은 그 앞을 뻔뻔하게 지나쳤다. 고개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보는 척하며 빠르게 걸어갔다.
최종배의 시선은 주둥이에서 그런 성진에게로 이어졌다. 앞에 서 있던 도련님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성진의 뒷모습을 열심히 따라갔다. 누가 봐도 가족세대의 상미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우둔한 그 계집애가 손짓까지 하는 게 보였다. 최종배의 입가에 은근히 미소가 번졌다. 최종배는 언뜻 생각했다. 저 녀석을 내부 첩자로 써야겠다. 아버지 사진이라도 공짜로 보여줄까?
그렇게 흡족하게 바라보는데 홍신영이 눈에 들어왔다. 몰래 엿들으려는 속셈인지 몸을 낮추고 성진과 상미 등 뒤로 독사처럼 기어가고 있었다.
"저 쌍년!"
최종배는 이를 악물었다. 미련한 계집애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성진에게 홍신영이 너무 가깝게 붙어섰다. 최종배가 급히 일어나 버럭 소리 질렀다.
"야야야! 7번! 야 이 개새끼야."
최종배의 고함에 검은손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외친 대상이 자신의 9분조원인지 빠르게 작업장을 훑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등이 넓은 김성근이었다. 그는 두 사람이 들어야 하는 통나무를 혼자서 들고 있었다. 9분조 작업량의 반을 그가 쌓아 올리고 있었다.
검은손의 시선은 김성근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지만 정작 그를 오전 내내 지켜보는 놈들이 있었다. 무력부조와 호위국조였다. 그놈들은 2작업반 전체가 아니라 오로지 김성근만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것 같았다.
"일하는 건 거의 머슴 수준인데."
무력부조의 붉은땅크가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그 옆에서 장갑차도 한마디 거들었다.
"말투도 촌놈이고.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 소리잖아."
주변이 잠깐 웃음으로 풀릴 뻔했다. 그러나 곧 호위국조의 핵구름이 말을 던졌다.
"야, 솔직히... 김정일 동지도 양강도 산골 출신이잖아. 백두밀영 집에서…"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퍽. 두령의 손이 그의 뒤통수를 쳤다. 그 소리가 엄청나게 컸다. 머리통에서 울려 공명까지 들렸다.
"이 새끼야, 너 그런 말들 했다가 여기 들어온 거잖아. 그런데 또..."
두령은 두목만큼 거칠지 않았다. 유별나게 자기 분조원들을 아꼈다. 그 진심 중에 입단속이 가장 컸다.
"당에서 조직비서 동지가 어떻게 태어났다고 했어? 혁명의 성산 백두산 천지를 뚫고 나오셨다고 했잖아. 너처럼 어디 오줌 구멍으로 새어 나온 줄 알아?"
그들에게 '백두혈통'이라는 말은 웃으며 입에 올릴 게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 제사 지내듯 대해야 하는 이름이며 동시에 체제를 지탱하는 신화였다. 그 말 앞에선 웃음도, 조롱도, 침묵도 모두 숙여야 할 의식이었다. 두령의 쓸데없는 그 충성심에 두목은 입을 씰룩거렸다.
잠시 후 그들 앞으로 미꾸라지가 불려왔다. 보위원과 다르게 그들의 개별담화는 전체가 모여서 들어보는 방식이었다. 무력부조와 호위국조가 미꾸라지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앉았다. 두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진짜 때렸다고?"
미꾸라지는 먼저 빙 둘러보았다. 기대들이 대단한 것 같았다. 수용소에 들어와 이런 대중의 관심은 처음이었다.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자기 얼굴에서 코와 입을 차례차례 콕콕 찍었다.
"여기랑 여기, 주먹으로 떡! 착! 때리니까 돼지가 살려달라고 울고 불고..."
반응들이 싸늘했다.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의심스러운 눈빛들이었다. 구체적으로 다시 묻던가. 박수라도 해줘야 하는데 당최 결과도 결론도 없이 산 놈들 같았다. 맨 끝에 앉은 놈이 입에 물고 씹던 풀을 뱉으며 나름 백 퍼센트 장담했다.
"이 새끼는 생긴 것 자체가 사실적이지 않아."
가운데 앉은 놈은 더 짧게 말했다.
"가서 때려봐."
"네…?"
미꾸라지가 그건 불법이라며 두 눈을 치뜨자 기관총이 머리 위로 큰 돌을 버쩍 쳐들었다. 미꾸라지는 어쩔 수 없이 김성근에게 향했다. 호통쳤다고 했을걸, 그 후회로 돌아봤다. 놈들 시선이 떼로 몰려와 그림자처럼 붙었다.
미꾸라지는 땅바닥을 두리번거렸다. 몽둥이나 뭐라도 찾는 척 시간을 끌었다. 그때였다. 도성진이 지나갔다. 미꾸라지는 보란듯이 달려가 김성근이 아닌 도성진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왜 때려요?"
"너 왜 째려봤어?"
성진의 목소리가 더 컸다.
"내가 언제 보기나 했어요?"
미꾸라지는 대꾸하지 않았다. 입만 씰룩이며 '살짝 쳤는데 엄살은…' 하고 속으로만 욕했다.
그때였다. 땅 위로 그림자 하나가 길게 드리웠다. 김성근이 일어서니 대지에 그늘이 진 것이다. 목소리는 등 뒤에서 너무도 가깝게 들렸다.
"어째 인간 질이 그리 안 좋슴둥? 사람이 왜 그 모양임둥?"
미꾸라지는 고개도 못 들고 빠르게 걸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계속 등을 쫓아왔다.
"경고하꾸마. 우리 9분조에 다신 얼씬 맙소꾸마. 오늘, 첫 번째 경고꾸마."
그 말 마디에 미꾸라지만 움찔한 게 아니었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감시반들 전부가 일순 긴장했다. 두목이 낮게 중얼거렸다.
"15호에서 '경고'라는 말을 쓰는 사람 봤어?"
붉은땅크가 진리처럼 못박았다.
"경고할 새 있습니까? 때리면 바로 맞는 거지."
장갑차가 콧김을 흘리며 거들었다.
"그래. 경고는 위에서나 쓰는 말이지. 아래 것들이 감히…"
순간 옆에 앉아 있던 호위국조의 두령이 벌떡 일어났다. 주변의 시선을 단숨에 끌어안으며 단호하고 명확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잘 들어. 약한 자를 괴롭히는 자! 이유 없는 폭행자! 이 감시반장이 절대 용서 안 한다."
그 선언의 첫 시범 대상으로 미꾸라지가 벌렁 뒤로 넘어졌다. 두목이 그의 배 위로 올라타며 주먹을 높이 쳐들었다.
"때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꾸라지가 밑에서 억울하여 항변했다.
"때려 보라고 했지, 때리라고 했어?"
첫 번째 주먹이 내려왔다가 이어 두 번째를 쳐든 그때였다. 숲이 떠밀려 내려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낙엽이 아닌 땅이 흔들렸다. 두목이 고개를 홱 돌렸다. 호위국조 모두가 예기치 못한 속도로 김성근에게 달려 내려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