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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 시경이었다.
가족세대 보위원실 문턱에서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지형철과 15호 관리소 군의관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윤진경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들어와 앉은 지형철에게 군의관이 따라 들어오며 의자를 끌어다 마주 앉았다.
"솔직히 말해 봐. 네가 저 여자 건드린 거 맞지?"
지형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배만 연신 빨았다. 그 연기를 가득 내뿜으며 물었다.
"산모 건강은 어때?"
"산모? 건강? 이 자식 진짜 정신 못 차렸구나."
군의관은 지형철 앞의 담배를 자기 앞으로 가져왔다. 피우려는 것보다 손에 뭔가 쥐려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삼촌이 본부 부부장이라도 그렇지... 너 미쳤어? 난 뭐 눈이 없어서 홍신영을 벗기는 줄 알아?"
"너야말로... 자식... 그런 쓰레기나 껴안고. 장가도 간 놈이."
"그냥 오줌은 밖에서 싸고 잠은 집에서 자는 거야."
"수술은 언제 가능해?"
군의관은 담배갑을 열고 한 개비를 꺼냈다.
"안돼. 7개월이면 수술해야 하는데 저런 여자한테 가능한 일이야?"
"그래서 네게 부탁한 거잖아."
"쌍둥이야."
그리고 군의관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말 앞에서 지형철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미간은 그늘 지면서 눈꺼풀이 떨렸다. 손가락 사이에서 담배 재가 떨어졌다. 간신히 속에서 묻어 나오는 말은 젖어 있었다.
"아까... 진료 볼 때... 그 말 했어?"
"그런 건 희망이 있을 때나 하는 말이지..."
그 희망이란 말이 절망을 더 강조하는 것 같았다. 지형철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나로서는 도울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이런 데서 잘못 시술했다간 여자도 위험해. 산소 호흡기도 필요하고, 출혈 대비 혈액도 그렇고..."
고집스럽게 한 자세로 앉아 있는 지형철에게 군의관이 진지하게 물었다.
"너, 정말… 그 여자 좋아해?"
지형철은 고개를 들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젖은 두 눈이 이미 대답하고 있었다. 그 촉촉함에 군의관은 시선을 벽 쪽으로 돌렸다. 더는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눈이었다. 그는 무거운 말을 꺼내기 전에 몸을 미리 덜어내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알려줄까?"
지형철의 시선이 묵직하게 군의관에게 꽂혔다. 그 눈은 이미 결심한 사람의 눈이었다.
"뭔데?"
군의관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소장도 이번 주 안에 해결하라고 했다며? 지금 위험 감수하고 수술해도, 정치부장 공석이니 조직부장 승인받아야 해. 알잖아. 그 놈... 여자를 살려내면 날 죽이자고 할 거야."
지형철은 재촉했다.
"그래서 방법이 뭔데?"
군의관은 침묵 끝에 한 마디를 내뱉었다. 칼날보다 짧게, 총알보다 빠르게...
"여자도, 애도 지키고 싶으면... 장본인을 죽여."
그 말이 떨어지자 지형철의 얼굴이 잠깐 깨졌다. 두 눈이 순간 크게 열리면서 턱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짧은 틈에서 무슨 말인가 나올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못했다. 숨이 목에서 끊겼다. 목젖에 걸린 무언가를 삼키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때 밖에서 경비대 군인들의 고함이 들렸다.
"불이다! 불이야!"
가족세대에서 일어난 불은 신숙자의 집이었다. 그녀는 간호사로 일할 때도 집에 와서도 격리되어 있었다. '남조선' 출신인 데다 말을 너무 쉽게 하는 버릇 때문에 관리소는 전염병 환자처럼 외부 접촉을 막았던 것이다.
신숙자는 하루 종일 들썩였던 관리소 인원교체를 출소와 입소로 착각했다. 그래서 밤새껏 딸을 부여안고 울다가 자기 집에 불을 냈던 것이었다.
그가 사는 곳은 목재로 만든 집이었다. 일반 수용자들과 떼어놓자는 의도로 토굴이 아닌 곳에 보내졌다. 원래는 옥수수 창고로 썼던 건물이었다. 그래서 불도 크게 번졌다. 뒤에는 또 다른 창고도 있어 불이 옮겨붙을 가능성이 컸다. 여자들이 많은 동네라 당직군관은 독신자세대도 비상소집을 걸었다.
9분조가 제일 먼저 달려왔다.
"엄마 나가자. 나 안 죽을래."
"엄마 아파. 무서워."
여자애들의 울음소리가 불붙는 집안에서 터져 나왔다. 검은손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가 불속으로 뛰어들자 주둥이와 가수, 김성근도 따라 들어갔다. 문틀은 불에 일그러졌고, 지붕은 이미 재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유일하게 살아 있는 건— 화염과 불꽃 사이 세 사람. 신숙자와 두 딸이었다.
신숙자는 두 딸을 꽉 그러안고 있었다. 9분조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 생명들에게로 뛰어갔다. 주둥이와 가수가 먼저 어린 두 딸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신숙자는 더 세게 그러안았다. 검은손은 그 엄마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제야 그를 쳐다보는 신숙자의 두 눈에서 오열이 터져 나왔다.
주둥이와 가수가 딸들을 끌어안고 빠져나갔다. 검은손이 손을 뻗쳐도 신숙자는 기어이 남겠다고 발악을 했다. 사방에 뿌려지는 신숙자의 그 두 팔과 다리를 김성근이 끌어모아 안고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 나와서도 신숙자는 다시 들어가겠다고 발버둥을 쳤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난 이 나라 사람도 아니라구요."
검은손이 결박하듯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같은 민족이잖아요. 같은 말을 하잖아요."
"그 민족이 뭔데... 이렇게 얼빠진 민족이 세상에 또 어디 있는데!"
검은손은 신숙자의 그 입마저 한 손으로 막았다. 가족세대 여자들도 신숙자 집 앞으로 많이 몰려왔다. 손에는 양동이와 바케스들이 들려 있었다. 도련님은 그들 틈을 헤매다가 한 여자 앞에서 물었다.
"장찌엔 알지요? 봤어요?"
"장 뭐라고요? 찌엔?"
주둥이도 똑같이 여자들 사이를 누볐다. 그는 도련님처럼 새로 온 여자를 붙잡지 않았다. 자기를 알아보고 웃는 여자에게 물었다.
"장찌엔은? 남았어요?"
그 여자는 더 밝게 웃으며 손으로 가리켰다. 그 끝에서 장찌엔의 2분조가 달려오고 있었다. 손에는 물을 담은 양동이가 들려 있었다. 그녀들도 달려오던 걸음을 뚝 멈췄다. 그 어떤 말보다도 마주 보는 시선이 더 큰 울림이었다.
다시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전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별도 아니었는데 상봉처럼 만나니 서로가 더 소중해졌다. 민유정만 보고 빠르게 걷던 주둥이를 장찌엔이 덥석 끌어안았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이것들이 뭐라고 이렇게 눈물 날 수가."
도련님과 마주 선 박해순은 말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그녀의 얼굴은 산을 몇 번 오른 사람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갑자기 박해순은 들고 있던 양동이를 땅에 내리꽂았다. 철컥— 물방울 몇 개가 튀었다.
그러고는 도련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순간 금지된 온기와 불법적인 체온이 뭐든 이길 감정으로 닿았다. 손에 이끌려 도련님은 걸음을 뗐다. 박해순이 앞에서 재촉하자 그의 걸음도 자연스레 빨라졌다. 그들의 눈앞에선 신숙자의 불에 그을린 목소리가 공기 속을 찢고 있었다.
"내 목숨을 내가 죽이겠다는데… 왜들 이러오! 뭐가 불법이오!"
뒤늦게 달려온 홍신영이 채찍을 흔들며 서 있었다.
"야, 이년아! 우리나라에서 자살은 반역인 줄 몰라?!"
그 소란 앞에서 두 사람은 방향을 틀었다.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목소리들은 아직 등을 붙잡았다.
"마음대로 살지도, 죽지도 말라는 게 그게 나라 법이요?! 내 목숨이라고!!"
"내 목숨? 우리나라에 개인 목숨이 어디 있어?! 당에 바칠 충신의 생명만 있지!"
"내가 남에게 충성하자고 태어났소?!"
"어머머 이년 뭐래? 총알 박아줘?!"
박해순이 먼저 뛰기 시작했다. 도련님도 곁에서 따라 뛰었다. 뒤에 떨군 목소리들은 서서히 작아졌다. 그러나 바닥을 때리는 발소리와 숨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들 앞에는 어둡고 낡은 골목들이 마주 섰다. 양쪽 담벼락은 높았고 돌무더기와 토굴들이 무덤처럼 그들을 가로막았다. 이 골목도 막혔다. 저 골목도 끝이었다. 숨소리가 더 거칠어지고 가끔 발이 헛디뎌졌다.
두 사람은 손을 놓지 않았다. 다른 골목에 접어드는 순간— 멀어졌던 목소리가 다시 바람을 타고 따라왔다.
"통영 여자를 요덕에 데려온 것부터 불법 아니오!"
"이년아 방아쇠 당겨 말아? 내가 못 죽일 것 같아?!"
"죽으려고 불지른 여자야! 죽여! 죽여!"
박해순과 도련님은 다시 돌아섰다. 헐떡이는 두 사람은 손을 놓지 않고 뛰었다. 방향도, 목적도 잊은 채 심장이 두드리는 대로 두 사람은 걸음을 맞췄다. 그렇게 골목을 헛돌던 그들의 발이 멈춘 곳은 박해순의 집 앞이었다.
박해순이 문을 열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문은 채 닫히지 못하고 덜컥 열린 채로 멈췄다. 창문 하나 없는 집인데도 틈새로 달빛이 흘러들었다. 가마가 걸려 있는 부엌이었다. 살고 있다는 흔적의 냄새보다 살고 싶다는 갈망의 기운이 더 고여 있는 공간이었다. 어둡고, 비좁은 지하실 같았다.
도련님에겐 박해순의 두 손이 있었다.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서로를 마주 봤다. 마주한 눈빛은 격렬했다. 심장의 박동이 목덜미까지 뛰어올라 있었다. 도련님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서 턱으로, 이어서 손끝으로 흘러내렸다. 입을 맞추려는 그 찰나 부엌 벽에서 또 다른 문이 벌컥 열렸다. 어둠 속에서도 근심으로 더 진한 얼굴이 드러났다. 박해순의 아버지였다.
"어디 불났어?"
아무 감정 없이 나오던 그 말끝이 도련님의 형체에서 굳어졌다.
"……아버지. 문 닫아."
박해순의 입에서 번개같이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도련님이 동시에 기겁했다.
"그놈 누구야?"
불난 것보다 더 놀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박해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숨조차 고르지 않고 외쳤다.
"내가 이 사람이랑 끝장 볼 일이 있으니, 아버지— 문 닫아요."
"… 무슨 끝장… 해순아."
"아버지 누명! 누명이요."
그 말 한 줄이, 도련님의 가슴까지 긁었다. 누명이란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절대 나오면 안 돼. 두 번 다시 실수하면, 이번엔 아버지 룡평 가."
그녀는 그 큰 손으로 문을 쾅 닫았다. 덜컥. 문이 닫히는 그 소리는 멎었던 도련님의 숨을 다시 터지게 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감정이 언어를 삼켜버리면서 눈빛이 손끝을 이끌었다. 숨이 겹쳐지고 눈빛이 붙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거칠게, 그러나 뜨겁게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입술이 맞닿음과 동시에 팔이 허리를 감았다. 몸이 벽으로 밀려나자 부엌 선반에 놓였던 그릇들이 와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짤그랑—쨍. 깨진 그릇의 파편 소리보다 더 생생한 것은 두 사람의 숨소리였다. 갈라지던 숨이 다시 이어지면서 두 개의 심장이 하나로 박동했다.
그때,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지금 너희들 싸우는 거야?"
박해순이 반사적으로 도련님에게서 떨어지며 외쳤다.
"아냐! 아버지, 문 열지 마!"
그녀의 외침은 절박했다. 이 순간만큼은 단둘이길 원했다. 숨을 가다듬기도 전에, 도련님이 다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오늘은… 가마치 없어."
그 말은 솔직한 애원 같았다. 도련님은 그녀의 몸을 더 깊숙이 끌어안았다.
"이젠 그런 짓 하지 마. 나 가마치 아냐. 부주석 아들이야."
"내가 어디 봐서…"
"다. 전부. 약속하면 한대로."
그 말에 박해순의 눈빛이 작게 흔들렸다.
"약속한 거잖아. 지키면 안 돼? 소문낼까 무서웠지?"
"이제 해도 돼. 뭐든… 다 해도 돼."
그는 이미 벌어진 그녀의 젖가슴 위에 얼굴을 묻었다. 숨이 꺼질 듯 깊었다. 여자는 기다렸던 몸이 먼저 대답했다.
"그럼 해줘. 더 쎄게— 네가 진짜라면… 해줘."
바로 그때, 문 너머에서 또다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싸우는 거냐고!"
속삭이던 박해순의 목소리가 벌떡 일어섰다.
"아버지, 실수하면 안 돼! 문 열지 마!"
그 소리 뒤에서 도련님이 세게 몸을 밀착하자 박해순은 한 번 더 소리쳤다.
"이 사람… 금방 끝나!"
도련님의 몸이 불처럼 달구어져 있을 때 주둥이는 뭐든 불지르고 싶을 만큼 들끓고 있었다. 감시반 놈들이 민유정과 자신을 에워싸고 대놓고 시비를 걸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령과 두목은 서로 눈을 맞추고는 비죽 웃었다.
"히야, 구읍리는 자유롭다. 동트기 전부터 연애질이고…"
"새벽에 붙으면, 밤에는 애 낳는 거야?"
하하하— 놈들은 웃음을 거둘 때도 똑같이 멈추었다. 마치 시작은 지금부터라는 듯 곧장 두목이 주둥이 앞으로 다가섰다.
"네놈 별명이 뭐야?"
"주둥이."
짧고 단단한 대답에 두령과 두목은 이번엔 의도치 않게 크게 웃었다.
"주둥이래. 하하하 별명도 맞아 죽기 딱 좋은…"
두목의 말에 두령은 더욱 배를 잡았다.
"구읍리는 정말 자유롭고 평화롭다니까. 하하하!"
그때 민유정이 그들 앞에 한 발 나섰다.
"내 별명은 매덕이."
두령의 웃음이 반쯤 멎었고 눈은 더 커졌다.
"구읍리는… 여자도 별명이 참 곱다. 안 그래?"
"그러게. 입에 쏙 들어온다. 매덕이는 무슨 뜻이야?"
민유정은 팔짱을 풀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저 눈길을 멀리 던지며 담담하게 말했다.
"매덕. 성병. 사람들은 날 에이즈라고도 해."
고요해졌다. 두령이 눈을 깜박였다.
"에…이즈…라고?"
그의 말에 옆의 놈도 한 발 뒷걸음치며 중얼거렸다.
"여기 구읍리는… 없는 게 없구나. 별걸 다 있구나."
"독버섯이 예쁘다더니… 아깝다."
"여자한테 독이라니, 무식하게. 가시 달린 장미라고 해야지."
저들끼리 지껄이던 중 두령이 주둥이 쪽으로 시선을 건넸다.
"너… 저 여자 만나도 일 없어? 병 안 걸렸어?"
주둥이는 피식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난 이미 전염됐지. 뜨겁게."
두 놈은 동시에 한 발짝 물러났다. 민유정은 주둥이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조롱으로 시작된 긴장은, 뜻밖의 감정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증상은?"
두목은 정말로 궁금해서 물었다. 주둥이의 시선은 저 멀리에, 아무도 없는 하늘로 이어졌다.
"특히… 밤에 누우면 더 아파. 여자의 몸으로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아플까… 그 생각하면 내 온몸이 쑤시고 심장이 아파."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러면서도 울림은 묵직했다. 민유정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손이 자기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모두가 주둥이의 그 한마디에 눌려 있었다. 민유정과는 다르게 찌그러진 얼굴의 두 놈은 서로를 바라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거… 불치병 아냐?"
"약도 없지…"
그 잡음을 덮으며 주둥이가 고개를 쳐들었다. 눈동자 속에 비친 별이 흔들리고 있었으나 시선은 일관했다.
"아픈대로 살거야. 끝까지, 더 아플 수 있을 때까지."
이어진 마지막 한 줄은 하늘을 들고 일어섰다.
"나에겐… 아픈 것도 소원이야."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민유정은 돌아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두 놈은 나름 서툰 동정으로 주둥이를 바라봤다. 두목이 감정 없는 쓸쓸한 표정을 띠며 중얼거렸다.
"쟤는… 손대지 말아야겠다."
"피 묻으면… 오히려 우리가 옮지."
주둥이는 역시 주둥이였다. 귀찮은 그 두 놈을 굳이 욕설이나 힘으로 쫓지 않았다. 입안 가득 침을 모아 골고루 굴렸다. 그리고 탁. 놈들 발치 가까이에 힘껏 뱉었다. 두목과 두령은 화들짝 놀랐다. 너무 가까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자각했는지 허둥지둥 뒤엉키다시피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동안 민유정은 슬그머니 쳐다보았다. 주둥이는 자신에겐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이미 가장 깊은 말로 고백했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