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반발-정치권 문제 제기 속 약가인하 속도조절 기류원료의약품 자급률 20~30%대 … 취약한 공급망 구조 재확인美·이스라엘-이란 충돌에 원료 수급-환율-물류 변수 동시 압박약가인하보다 공급망 안정-원료 비축 등 '제약주권' 관점 대응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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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늘어나던 시기 해열진통제 수요가 급증하면서 서울의 한 약국 입구에 타이레놀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210621 ⓒ연합뉴스
정부의 제네릭 약가인하 드라이브가 주춤하고 있다. 업계 반발과 노동계 우려, 정치권의 문제 제기까지 겹치면서 시행시기와 인하폭을 다시 보려는 흐름으로 해석된다.문제는 약가인하 보다 더 본질적인 장면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 국면에서 나타났다는 점이다. 낮은 원료의약품(API) 자급률과 외부 변수에 취약하다는 제약업계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금 정부는 약가인하가 아니라 전쟁과 물류 충격 속에서 필수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다.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이날 7시26분 기준 전장대비 14.85% 오른 배럴당 107.54달러를 기록했다. WTI 가격이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이날 WTI는 한때 111.24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국제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같은 시각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14.85% 오른 배럴당 107.54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 가격 역시 한때 배럴당 111.04달러까지 고점을 높였다.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해협 통행이 막히면서 원유 물류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주요 산유국들의 저장시설은 빠르게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고, 이에 따라 감산으로 이어지는 등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전쟁이 완화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이란은 사망한 야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뒤를 이을 최고지도자로 그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선출했다.모즈타바는 대미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이란 후계 구도에 관여해야 한다면서 하메네이의 아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만큼 미국의 대이란 공세 수위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문제는 물류 차질 우려와 유가 상승이 맞물리면서 API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제약·바이오업계의 구조적 취약점이 노출됐다는 점이다.업계의 가장 취약한 고리는 낮은 API 자급률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25.6%에 불과했다. 2024년 자급률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31%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이 수치는 △2020년 36.5% △2021년 24.4% △2022년 11.9%로 하락한 뒤 이듬해 상승 반전했으나 일본(50~60%), 유럽(40~50%) 등과 비교하면 높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중동 리스크로 해외공급망이 흔들릴 경우 원료의약품 수급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여기에 환율 변수도 부담이다. 강달러가 지속할 경우 원-달러 상승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산 원료약을 구매할 때도 달러 결제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환율 상승은 곧바로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게다가 유가 급등은 원료의약품 합성 과정에 필요한 기초화합물의 가격 상승으로도 이어진다. 또 생산공정에서 에너지 사용량이 높은 데다 플라스틱·용매 등 석유화학 기반 원료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원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바이오의약품 역시 사정권이다. 바이오의약품은 온도에 민감해 항공운송 의존도가 매우 높다. 중동이 글로벌 항공물류의 핵심 허브인 만큼 걸프 지역 공항들이 분쟁 영향권에 포함되거나 항로가 폐쇄되면서 항공기들이 우회 항로를 택하고 있다. 운송 거리와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항공유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항공 화물운임도 급증하고 있다.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중동전쟁으로 항공편이 감축되거나 항로변경, 항공폐쇄, 입항회피 등의 조치가 있으면 제품 공급 일정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다"며 "전쟁이 장기화하면 물류·에너지·환율 등 다양한 변수들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원료 수급 불안은 감기약이나 항생제 같은 필수의약품의 수급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니라 보건안보 차원의 위협이 될 수 있다.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수요 급증과 공급망 문제로 타이레놀 품귀현상이 빚어졌던 것이 국내 원료의약품의 해외의존도 문제를 잘 보여준다"며 "사태가 장기화하면 필수의약품, 공급부족의약품을 중심으로 의약품 공급에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이런 가운데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은 다시 논의 국면에 들어간다. 2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되기로 했던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은 업계 반발과 노동계 우려, 정치권 문제 제기 등으로 안건이 상정되지는 않았다.보건복지부는 약가제도 개편안을 11일 소위원회에 상정한 뒤 3월 건정심에서 의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정부가 약가인하를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신약개발 활성화와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 즉 제약산업 생태계 강화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드러낸 문제 역시 바로 그 공급망이다.전쟁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의약품 공급망 다변화와 원료의약품 비축 전략 고도화 등 '제약주권'을 위한 국가 차원의 대응이 시급하다. 지금 정부가 먼저 따져야 할 것은 '약가체계의 합리성과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약이 끊기지 않는 산업구조를 갖췄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