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용자들은 아침을 극도로 싫어했다. 해가 뜬다는 건 또 하루의 고통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수령이 태양이라니 싫은 이유가 더 붙는 셈이었다.

    대신 달을 좋아했다. 비록 눅눅하고 차갑고 굶주린 밤일지라도 살아서 넘겼다는 안도감이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죽었더라도 적어도 오늘 죽은 건 자기가 아니라는 존재의 확인이었다.

    별이 빛나지 않아도 좋았다. 바람이 불고 통증이 몰려와도 상관없었다. 밤은 견딘 자만 가질 수 있는 삶의 위안이었다. 나눌 말도 그때가 제일 많았다.

    막사는 비워지고 운동장엔 수용자들이 넘쳤다. 취침 점검을 기다리며 도련님과 주둥이도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둘은 가족세대 지역 쪽을 보고 있었다.

    "형."

    도련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해순이가 듬직해 보이지 않아?"

    주둥이가 옆을 흘끔 보았다.

    "왜? 10초 소문 안 냈다고?"

    "아니."

    도련님은 진지했다.

    "말하는 거나 행동이 신뢰가 있어. 그거 흔치 않잖아."

    주둥이는 코를 쓱 훔쳤다.

    "얻어먹은 건 가마치 한 조각인데 설마 돼지 한 마리 물어내라는 거야?"

    "아니, 결혼까진 아니고 그냥…"

    "결혼은 엉겁결에 하는 거야. 그나저나."

    주둥이는 도련님 앞으로 고쳐 앉았다.

    "나 영어 한 문장만 가르쳐줘라."

    "갑자기 무슨 영어?"

    "유정이 영어 전문가잖아. 내 입에서 영어가 딱 터져 나와 봐. 그러면 유정이도 놀래서..."

    "그냥 주둥이야."

    도련님은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다른 한구석에선 김성근이 혼자 앉아 있었다. 얼굴엔 아직도 푸르스름한 멍이 남아 있었다. 표정과 자세는 그대로였다. 그 옆으로 도성진이 살며시 다가왔다.

    "아저씨. 아까… 고마웠어요."

    김성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그저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도성진은 옆에 앉아 기다렸다. 김성근이 정면을 응시한 채 말했다.

    "방해하지 맙소꾸마."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그리고 성진은 다시 재잘거렸다.

    "나도 처음엔… 아무하고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김성근의 눈동자 한쪽이 조금 움직였다.

    "근데… 혼자면요, 미꾸라지 같은 놈들이 더 우습게 보거든요."

    김성근이 처음으로 길게 말했다.

    "아니꾸마. 몰라서 하는 말이꾸마. 사람 겉으로 보면 안되꾸마. 나는… 절대 혼자가 아니꾸마."

    도성진은 웃었다. 신나서 더 짓궂게 달려들었다.

    "남 다 잘 때도, 쉬는 시간에도, 지금도 계속 혼자 이러고 있잖아요."

    "내 혼자면… 벌써 죽었수꾸마.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 계시꾸마. 나는 지금도 그분과 이야기하고 있수꾸마. 그래서 방해 말라는 거꾸마."

    도성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의 아래위로 빠르게 훑어보았다. 금방 자기가 들은 말을 다시 의미해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저씨. 혹시 예심 받을 때… 많이 맞았나요?"

    그 말에 김성근은 재차 확신했다.

    "그때도 나는 결코 외롭지 않았수꾸마. 그래서 맞은 자가 승리하고, 때린 자가 굴복하는 기적도 가능했던 거꾸마."

    도성진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심각하게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긴 약도 없는데…"

    다음날 작업 휴식 시간 9분조원들은 도성진을 중심으로 둥글게 앉았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한 방향에 몰려 있었다. 저쪽, 밭 가장자리에 김성근이 홀로 앉아 있었다. 아직도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무릎을 모으고 등은 반듯했으며, 눈은 감겨 있었다. 곧은 자세가 제방뚝 아래 작업장에선 바위 같았는데 흙 위에선 큰나무 같았다.

    "어쩐지."

    주둥이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이 한 생을 저 한 자세로 살 순 없거든."

    "그럼 우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죠?"

    가수가 물었다. 진지한 걱정이었다. 검은손이 고민을 모으듯 팔짱을 꼈다.

    "제일 걱정은… 병이 심해지면 말실수라도 할까 봐. 그럼, 정말 큰 변인데."

    도련님이 이를 잡으며 말했다.

    "정신병동이 립석리에 있지?"

    주둥이는 씹던 풀을 뱉었다.

    "거기 사람들은 얌전히 저러고 있지도 않을걸. 사람 꽉 차서 여기로 뺐나 봐."

    도성진이 어른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할 수 없지요. 우리 9분조에 왔는데… 내가 맡을게요."

    점심시간에 도성진은 김성근 옆으로 가 앉았다. 두 사람은 마주 보지 않았다. 말도 하지 않았다. 성근은 자기 침묵을 고수했고, 도성진은 곁에 앉아 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를 간호한다는 성실한 표정이었다. 멀리서 9분조원들은 주먹밥을 손에 들고 그쪽을 힐끔거렸다.

    도성진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병세를 흉내 내듯 이마를 짚고, 어지러운 시늉을 했다. 검은손은 빨리 밥을 먹이라며 입 벌리고 그 속으로 손가락을 흔들었다. 안 그래도 김성근은 눈을 감은 채 주먹밥을 손에 쥐고 있었다. 도성진이 은근히 말문을 텄다.

    "어지러워요? 제가 조금씩 뜯어서 먹여 드릴까요?"

    성근은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멀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막내를 보는 미소가 차츰 밝아졌다. 그 모습이 성진이 보기엔 병이 호전된 것처럼 보였다. 그도 김성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꺼 먹고 싶어 그러는 검둥? 그런 검둥? 정확히 말해봅소꾸마."

    도성진은 긴장했다. 사회 있을 때 옆집 의사 아저씨가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정신병 있는 사람들은 웃기 전에 화를 내고 또 그 반대로 돌변한다는 기억이었다. 그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요. 우리 분조는 절대… 그런 거 안 해요."

    "일없수꾸마. 영적인 배고픔이 수치꾸마, 육체적 배고픔은… 부끄러운 게 아니꾸마."

    도성진은 그 말을 곱씹었다. "'영적인 배고픔'이라고?" 태어나 처음 듣는 말이었다.

    "영적인 게… 뭐예요?"

    김성근은 그를 더 지그시 바라보았다.

    "죽으면 어디 가고 싶슴둥? 나랑 같이 가고 싶슴둥?"

    "네? 아저씨는 어디 가는데요?"

    "죽으면 같이 가겠냐 묻는 거꾸마."

    도성진은 갇힌 것도 억울한데 죽어서도 어디 간다는 말에 황당해했다. 그래서 소리쳤다.

    "죽으면 갈 데나 있어요? 이놈들이 평토장을 하잖아요. 다 흙으로 돌려버리는데…"

    김성근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육체는 땅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늘로 가는 거꾸마."

    도성진은 미간을 더 좁혔다.

    "영혼은 또 뭐예요? 그게 뭔데 하늘로 가요?"

    김성근은 얼굴이 더 밝아졌다.

    "정말 하늘나라 가고 싶슴둥? 내 설교를 따라올 수 있슴둥?"

    "설설 설교는... 그 그건 또 뭐예요?"

    도성진만 놀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 둘을 지켜보던 9분조원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련님이 망원경처럼 두 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

    "얼라반동이 왜 저렇게 깜짝깜짝 놀라지?"

    주둥이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걔가 세상 멀쩡한 앤데 놀라야 정상이지."

    "근데… 성근이가 보던 중 오늘이 제일 신난 표정인데?"

    가수의 말에 검은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원래 저렇게 말 많았나?"

    궁금증은 결국 몸을 움직였다. 주둥이가 살금살금 뒤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한 명, 또 한 명... 드디어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9분조는 허리를 낮추었다. 먼저 김성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믿어야… 천국에 가꾸마. 믿음이 없으면 지옥에 가꾸마."

    "근데…죽고 나서 천국 갔는지 지옥 갔는지 어떻게 알아요? 갔다 온 사람이 있으면 벌써 소문 다 났죠."

    "그라면 내 하나 묻겠소꾸마. 이 지옥에 갇혀 있으면서… 믿고 싶었던 순간도 없슴둥? 그런 순간도 없이, 네 숨이… 쭉 쉬어짐둥?"

    그 말에 주둥이가 자신의 가슴에 십자가 모양을 그렸다. 기독교인이란 뜻이었고, 다들 옳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요?"

    도성진이 물었다.

    "믿음도 많고… 생각도 깊은 분인데… 천국까진 못 가도 자유는 있어야죠. 근데 왜… 나랑 여기 같이 있어요?"

    김성근은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도성진과 엿듣던 9분조원들의 시선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김성근은 처음으로 자기가 부정당한 괴로운 침묵을 보이고 있었다. 도성진이 급히 말했다.

    "미안해요. 헐뜯으려는 말 아니었어요."

    그러나 김성근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엔 상처도, 멍도, 피도 아닌 오로지 믿음만이 남아 있었다. 그가 힘찬 어조로 말했다.

    "나는 너랑… 틀리꾸마. 나는 힘들고 아프고 슬퍼도, 살면서 얻는 것들보다도 죽어서 영원할 천국을 더 믿수꾸마."

    그 말은 흩어지지 않았다. 바람도, 하늘 땅도, 9분조원들도 그 순간만큼은 그 한 문장을 조용히 삼키듯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도성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저씨.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그 소리를 들은 검은손이 불쑥 몸을 일으켰다. 손엔 주먹밥을 움켜쥐고 성큼성큼 신입에게로 걸어갔다. 그때 김성근은 등까지 깊이 숙이고 있었다. 방금 영원한 천국을 말하던 사람이 지금은 견디는 고통의 무게를 더 가까이서 느끼고 있었다. 항상 정면만을 바라보던 그의 머리가 불과 한 뼘 아래로 향했을 뿐인데도 엄청 깊어 보였다. 검은손이 그 앞에서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근아. 난 너의 천국을 믿는다."

    김성근은 얼굴을 들었다. 그 눈은 이미 그 전에 젖어 있었다.

    "천국은… 어떻게 알았슴둥?"

    검은손은 입술을 쓱 닦고 거칠게 웃었다.

    "나 여기서만 십년 넘었다. 아멘도 안다."

    김성근은 예의를 차리듯 몸을 일으켰다. 그 사이 검은손이 뒤돌아 외쳤다.

    "야, 거기 다 나와!"

    숨어 있던 9분조원들이 하나둘 머쓱한 얼굴로 일어섰다. 민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천천히 걸어 나왔다. 검은손은 그들을 가리키며 김성근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같이 살 식구들이야. 어때, 우리 9분조?"

    김성근은 그 얼굴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도성진을 가장 먼저 바라보았다.

    "나보다 어려서… 위안 많이 됐수꾸마. 어린 게 고생은 먼저여서 영 불편했지만… 그래도, 멀쩡하니 다행이꾸마. 그리고 분조장도 믿음이 가꾸마."

    주둥이를 보면서는 슬쩍 웃었다.

    "저 인간은 속이 참 편한 것 같수꾸마. 그래서… 멋있수꾸마."

    도련님은 성의있게 웃음 지으며 얼굴을 들이댔다. 김성근의 눈은 그를 지나쳐 가수까지 스쳤다가 다시 분조장 쪽으로 고정되었다.

    "이 두 사람은… 아직 잘 모르겠수꾸마. 개성이 안 보이꾸마."

    도련님이 한 걸음 더 바투 다가섰다.

    "아멘."

    곧이어, 가수도 고개를 숙이며 따라 했다.

    "아멘."

    김성근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꾸마. 다들 독특하꾸마. 우리 분조… 참, 영 좋수꾸마."

    검은손이 껄껄 웃으며 김성근을 덥석 안았다. 근데 안긴 것 같았다. 주둥이와 가수, 도련님이 둘러싸며 안았다. 도성진은 그런 9분조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검은손은 내친김에 씨름장사 별명이 어떠냐고 물었다. 김성근의 얼굴이 금세 심각해졌다. 다시 주저앉을 기세였다.

    "예수님이 아는 내 이름은 김성근 하나꾸마."

    "그래. 너만은 네 이름대로 가자."

    검은손의 그 말에 김성근은 그를 덥석 업었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