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위, 정치적 외풍에 어떻게 버틸 건가베네수엘라, 총 아닌 합법 절차로 독재의 길로"민주주의 길, 권력 독재 늪 … 기로에 선 국가"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충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에서 미소를 보이고 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충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에서 미소를 보이고 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란몰이' 공세를 이어가면서 사법부 압박을 노골화하고 있다. 연내 법원행정처 폐지 및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인데, 결국 대법원장의 인사권까지 흔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위헌 논란과 함께 "베네수엘라식 독재 모델을 답습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7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5일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최근 사법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며 "제도가 그릇된 방향으로 개편된다면 그 결과는 우리 국민에게 직접적이며 되돌리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사법부를 향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무겁다"며 "이럴 때일수록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을 묵묵히 수행해 내는 것만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공청회는 사법제도의 바람직한 개편 방향과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법조계,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심도 있는 논의를 갖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이는 최근 민주당이 강행하려 하는 이른바 사법 개혁안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사법부 독립을 방어하는 대안을 고심하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됐다.

    앞서 민주당 사법불신 극복 및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는 지난 3일 국회에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위 신설 등을 골자로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이른바 '사법행정 정상화 3법'을 공식적으로 발의했다.

    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사법행정위는 법관 인사·징계·예산·회계 등 사법행정 전반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로, 장관급인 위원장을 포함해 13명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위원장 포함 9명은 외부 인사로 채워지며 법관은 4명에 그친다. 대법원장이 직접 지명하는 법관 1명, 전국법원장회의 추천 1명, 전국법관대표회의 추천 2명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법행정위 신설은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축소되는 것을 넘어 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고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헌법 제101조 제1항에 따르면,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사법권에 속하는 사법행정권을 법원이 아닌 다른 기관이 담당하도록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사법행정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들고 있지만, 법관 인사를 외부 기관이 담당하게 되면 이 자체만으로 재판에 간접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어 사법부 독립성을 중대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법조계의 우려가 잇따른다.

    이번에 민주당이 발의한 사법행정위 모델은 2017년 국회 개헌특위자문위원회 사법분과에서 나온 '사법평의회' 제도를 변형한 것으로, 당시에도 법관 인사권이 정치적 외풍에 노출될 가능성이 지적되면서 무산된 바 있다.
  •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12·3 계엄 사태 1년을 맞아 열린 '행동하는 K-민주주의' 특별좌담회에 참석해 있다. 왼쪽부터 조승래 사무총장, 정 대표, 황명선 최고위원.ⓒ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12·3 계엄 사태 1년을 맞아 열린 '행동하는 K-민주주의' 특별좌담회에 참석해 있다. 왼쪽부터 조승래 사무총장, 정 대표, 황명선 최고위원.ⓒ연합뉴스
    이에 더해 민주당은 대법관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대법관 증원법까지 벼르고 있다.

    대법원 증원 자체가 곧바로 독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권력이 대법관 임명권을 활용해 사법부 다수 의석을 장악하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법조계와 야권에서는 민주당의 사법 개혁 구상이 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면서 결국 사법부를 장악하고 독재 정권으로 들어선 베네수엘라의 사례와 닮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른바 '볼리바르 혁명'을 내세워 1999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가 개혁의 첫걸음으로 단행한 것이 '사법 개혁' 미명하에 기존의 대법원을 무력화한 작업이었다.

    차베스 정권이 장악한 의회는 친정부 인사로 대법원(최고법원)을 채웠고, 사법부 장악의 분수령이 된 2004년에는 대법관 수를 기존 20명에서 32명으로 늘리는 법을 통과시켰다. 새로 생긴 12석 전원은 친정권 인사로 채워졌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베네수엘라의 사법 장악 과정을 두고 "대법원이 정권을 견제하기는커녕 행정부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도구로 변했다"고 평가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의 독재는 총·칼로 법원을 장악함으로써 이뤄진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으로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뒤 국회에서 법률을 통과시키는 합법적인 절차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는 국제사회의 경고가 커지고 있다. 사법 개혁은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지만 그 결과가 반(反)민주화를 낳고 있는 패턴이 고착되는 탓이다.

    최은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사법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최고법원이 무너져 내린 나라가 있다"며 "사법부 찬탈의 무대는 다름 아닌 베네수엘라"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민주당의 행보는 거울을 비추듯 그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닮아도 너무 닮았고 위험해도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워 재판부를 임의로 꾸리고 판결을 통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폭거"라며 "대한민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민주주의의 길을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권력 독재의 늪으로 추락할 것인가"라고 밝혔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범죄자 대통령이 되니까 이 모양이 아니냐"면서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요즘 '재메수엘라(이재명·베네수엘라 합성어)'가 유행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