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핵억제 넘어 핵보장 행동으로 보여야""자강→확대 균형, 자주→폐쇄회로 속 축소 불균형"
  • ▲ 니어재단(이사장 정덕구)이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복합 전환기, 한국의 자강지계'를 주제로 2025 국가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조문정 기자
    ▲ 니어재단(이사장 정덕구)이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복합 전환기, 한국의 자강지계'를 주제로 2025 국가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조문정 기자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세계질서가 '세력권 시대'로 부활하고 있다"며 "한국은 '동맹 없는 자강'을 선택할 수도 없고, '자강 없는 동맹'에 안주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니어재단(이사장 정덕구)이 '복합 전환기, 한국의 자강지계'를 주제로 개최한 국가전략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자강과 동맹, 연대를 상호 추동시키는 복합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격랑을 헤치며 동맹을 순항시키고, 자강과 연대를 어떻게 연계해 구체적으로 추진할 것인가, 즉 동맹·연대·자강 간 전략적 믹스(mix)를 어떻게 최적화하느냐가 최대의 과제"라며 "자강은 동맹을 지렛대 삼아 국제연대를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힘의 토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방이 관세·안보·이념 문제로 분열하고 반(反)서방은 대안적 국제질서 모색을 위해 단결하는 가운데,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의 기회주의적 행태로 인해 "세계질서에서 적과 동지의 경계선이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중 전략 경쟁, 미국의 러시아 관여 전략, 중·러의 무제한 전략협력과 북·러 전략동맹으로 연결되는 저항의 축,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동맹 관계 재설정, 브릭스(BRICS, 非서방 신흥경제국 연합체)의 부상과 글로벌 사우스의 다중 동맹 추세,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 첨단기술 및 공급망 전쟁 등을 주요 현상으로 꼽았다.

    윤 전 장관은 "전략적 이해와 가치보다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거래적 측면과 일방주의를 선호하는 트럼프 2기를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이해를 같이 하는 분야를 확대해 한국이 미국에 필수적인 동맹임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며 "한미조선협력(MASGA)을 넘어 MAAGA(미국과 동맹을 위대하게)로 확대해 나가는 전략이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향후 발표될 미국의 글로벌 태세 검토 보고서(GPR)와 관련해 "병력보다 능력 중심으로 전환하며 아웃박싱(out-boxing) 전략으로 바뀔 것인지 여부와 이 경우 주한 유엔군사령부 본부 기능의 일본 이전을 포함한 동북아 전략 중심축의 일본으로의 이동 여부"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동시에 억제하는 이중억제(Dual deterrence) 개념의 공식화 여부, 대만 해협을 포함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한국의 지역적 역할의 요구 강도, 주한미군의 규모·성격·구조·역할의 변화와 주한미군 사령관의 3성 장군 임명 여부, 한미 핵협의그룹(NCG)의 유지 여부, 전략적 유연성과 지역 역할 동의 시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비와 국방비 대폭 증대 요구 여부, 미북 정상 회담의 조건 없는 재개 및 '북한 비핵화' 입장 명시 않은 핵군축 협상 수용 여부 등도 전략적 체크리스트 차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윤 전 장관은 북핵과 중·러 협력 강화에 따른 안보 불안 속에서 한국의 핵전략 다변화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미국은 '핵 억제'에서 더 나아가 '핵 보장'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에 저촉되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모델(전술 핵 배치 등 핵공유),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와 호주 모델(핵추진 잠수함 도입 및 건조), 일본 모델(완전 핵주기 사전 허용)의 3개 옵션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정학적 대격변과 글로벌 리더십 부재 속에서도 중견국답게 새 국제질서 형성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며 "동맹의 현대화와 변환 과정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어렵더라도 기회를 만들어 동맹의 프리미어 리그에 계속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오늘날 각국이 불가피하게 선택하려는 자강의 길은 일부 이념가들이 제기해온 자주 노선의 개념과는 출발점부터 종착점에 이르기까지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며 "자주는 동맹과 연대 없이 폐쇄회로 속에서 배타적으로 독자적인 생존방정식을 모색한다. 반면 자강은 동맹과 연대와 함께 어우러져 국가의 생존을 뒷받침하되 그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 스스로의 잠재력과 현재력을 키우는 생존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강은 확대 균형을 추구하나, 자주 노선은 폐쇄회로에 갇혀 축소불균형 국가로 이행하게 된다. 지금 세계 어느 나라도 완전한 독자 생존력을 갖춘 나라는 없다. 동맹과 연대 없이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의 높은 복지를 유지할 수 없다"며 "한국의 자강전략은 독자적인 유럽 방위체제를 신속히 구축하려는 유럽연합(EU)의 자강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 잠재력과 방위역량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