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교류·정상화·비핵화로 한반도 냉전 종식北 '비핵화 불가' 선언 속 선언적 구호 전락 우려3단계 비핵화, 北 핵보유국 기정사실화 위험전문가 "동맹·북핵 현실 외면한 자주론은 허상"전술핵 재배치 호소할 외교적 기회에 이상론 제시
  •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인공지능(AI) 자주국방론'을 주창하면서 동시에 "외국군 없이는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각의 굴종적 사고"라고 밝혔다. 이어 24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뉴욕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는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할 방법론으로 'END(교류·정상화·비핵화)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병력 자원 감소와 한미동맹의 비대칭성에서 비롯한 '자율성-안보 딜레마'를 극복할 방안으로 '스마트 강군'을, 국제무대에서는 남북 교류와 단계적 비핵화를 통한 평화 구상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두 비전 모두 현실적 제약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병력 우위의 원칙을 무시하고, 동맹과 확장억제를 경시하며, 북핵 위협에 대한 실질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현실을 외면한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李 대통령 "AI 전투로봇 50명이면 수천수만의 적도 감당"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AI 전투로봇, 무장 자율드론, 초정밀 공격 방어 미사일 등 유무인 복합 첨단 무기체계를 갖춘 50명이면 100명 아니라 수천수만의 적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며 "대한민국 군대는 장병 병력 수에 의존하는 인해전술식 과거형 군대가 아니라 유무인 복합체계로 무장한 유능하고 전문화된 스마트 정예 강군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군은 북한에 비해 상비군 숫자는 적지만, 군복무를 마치고 지금도 훈련 중이며, 즉시 전투에 투입 가능한 예비 병력이 260만"이라며 "우리나라는 1년 국방비가 북한 국가 총생산의 약 1.4배이고, 세계 군사력 5위를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또 "중요한 건 이런 군사력, 국방력, 국력을 가지고도 외국 군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각의 굴종적 사고"라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위 '똥별' 발언까지 소환해 가면서 외국 군대가 없으면 국방을 못 한다는 인식을 질타했다.

    ◆유엔총회선 '한반도 비핵화 스몰딜' 구상과 'END 이니셔티브' 발표

    이 대통령은 24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의 세 가지 원칙으로 "상대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일체의 적대 행위 배제"를 제시하면서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묶은 '엔드(END)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가장 확실한 평화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라며 "END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 대화로 한반도의 적대와 대결 시대를 종식(END)하고,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비핵화는 엄중한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며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의 '중단'에서 '축소'를 거쳐 '폐기'에 이르는 '한반도 비핵화 스몰딜 구상'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단계적 비핵화 해법을 앞서 제시한 END 이니셔티브의 핵심 축으로 연결시켰다.
  •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END 이니셔티브, 실효성 결여 우려 … 3단계 비핵화=北 핵보유국 인정 절차 위험

    그러나 이 대통령이 제시한 END 이니셔티브는 선언적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북한 김정은은 이미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최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우리는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일체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 만큼, 대화의 출발선조차 만들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 정부처럼 원조와 지원을 대화의 마중물로 삼는 방식을 답습할 경우 성과 없는 '퍼주기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북한이 미국과의 '군축 협상'을 통해 미국 본토를 겨냥한 전략핵만 폐기하고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은 유지한 채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곧 END 이니셔티브가 단계적 비핵화가 아니라 사실상 북한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절차로 전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END 이니셔티브의 마지막 단계인 '3단계 비핵화' 해법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비핵화 의제화 자체를 거부하며 이미 헌법 차원에서 '비핵화 불가'를 못박은 상황인 만큼, 동결이든 축소든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기존 핵을 그대로 둔 채 실험·개발만 중단하는 수준에 그쳐 결과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승인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북핵 공격 억제하는 핵심 안보 축"

    이러한 현실에서 주한미군을 겨냥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북핵 위협을 외면하는 것이자 북핵에 대한 가장 강력한 억제력을 제공하는 한미동맹을 폄훼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전직 한미연합사령부 관계자는 "북한의 핵 위협은 대한민국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한미동맹은 단순한 군사 협력을 넘어 북한의 핵 공격을 억제하는 핵심 안보 축이고,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 억제'는 북한의 핵 사용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방패"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엄중한 현실을 외면하고, 1970년대의 자주국방 논리를 끌어와 동맹 관계를 폄훼하는 것은 안보 불확실성만 키울 뿐"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상대 의도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희망만 앞세우면 자기최면에 빠지고, 더 지나면 자기 확신을 넘어 종국에는 신념으로 굳어진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북한에 아부해 평화를 구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굴종적 사고"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예비역 육군 준장인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은 "현재 우리군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문제는 핵을 가진 김정은을 핵이 없는 우리군이 어떻게 대응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것인가"이라며 "자주국방은 동맹을 버리고 홀로 서겠다는 선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도 생전에 '한미동맹은 우리 힘을 배가시키는 전투력 승수'라고 말했다. 동맹은 우리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억제력을 확대하며, 전시에 미군의 전략자산 투입을 보장한다"며 "이를 이념적 대립으로 몰아가거나 '굴종'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것은 국민을 불필요한 안보논쟁으로 분열시킬 뿐이다. 자주국방은 고립주의가 아니라 연합방위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北 병력은 100만 명 이상  … 우리 군은 45만 명"

    전문가들은 'AI 전투로봇 50명이 수천 명의 병력을 이긴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도 전략적 현실을 도외시한 낙관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쟁철학의 고전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언급된 전쟁의 첫째 원칙인 '수의 우세 법칙'에 따르면, 군사력은 병력 수에서 출발한다.

    미국 군사분석가 트레버 듀피의 방정식(S = k·N²) 역시 같은 결론을 뒷받침한다. 여기서 N은 병력 수, k는 무기·지휘·사기 등 병력의 질, S는 전투력(Strength)을 의미한다. 병력이 많으면 전선을 유지하고 측면 기동과 예비력 투입 같은 전략적 옵션이 늘어나지만, 병력이 줄면 전투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고 아무리 좋은 무기와 전략을 갖추고 있어도 장기전·소모전에 취약해진다.

    주 소장은 "병력규모가 3분의1이면 질은 9배가 되어야 상쇄된다. 북한군이 아무리 핫바지 군대일지라도 우리 군이 9배나 질적으로 우세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사례에서도 AI 기반 타격과 드론이 대규모로 활용됐지만, 지상군 투입은 불가피했다고 지적했다.

    예비역 육군 소장 출신인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도 "결국 전쟁을 마지막으로 종결하는 것은 대규모 지상군 투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병력은 100만 명 이상인데 우리 군은 45만여 명에 불과하다. 35만 명 시대도 머지않았다. AI 전투로봇 등으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임 의원은 또 "자주국방은 동맹 배제가 아니라 오히려 동맹 강화를 통해 완성된다. 진정한 자주는 우리 군 역량을 극대화하고 동맹 전력과의 통합을 통해 달성된다. 세계 최강 미국조차 동맹·협력국과 전쟁을 수행한다"면서 걸프전, 이라크전 등의 사례를 언급했다.

    아울러 그는 국내총생산과 국방비가 한국보다 모두 2.5배에 달하는 독일에도 미군 3만6000여 명이 주둔하고 있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이 대통령의 논리라면 독일에는 미군이 없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전술핵 재배치 호소할 외교적 기회에 이상론 제시

    전문가들은 북한 핵 위협이 상존하는 한, 병력·동맹·확장억제를 결합한 총체적 해법만이 현실적이라며 이상론적 접근은 국민 불안만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전직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 안위라는 책무를 지닌 자의 안이한 안보 인식과 국방 무지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260만 예비군을 내세우며 상비군 부족을 가볍게 보는 것은 위험하다. 현대전은 고도로 숙련된 상비군이 신속하고 정밀하게 움직이는 전쟁이고, 예비군은 동원체계 한계로 즉각적인 전투력 발휘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 대통령은 방위산업 강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술력으로 병력 부족을 메울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아무리 첨단 무기가 있어도 이를 운용할 숙련된 인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며 "실제 군 복무 중인 장병들의 복지나 초급 간부의 사기 문제를 외면하고 예산을 삭감했던 과거의 행보는 기술력 강조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이번 유엔총회 연설이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와 같은 실질적 확장억제 강화의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할 중요한 외교적 기회였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이러한 현실적 대안 대신 이상론적 평화 구상에 머문 탓에, 북핵 위협에 대한 구체적 해법을 찾으려는 국제사회와 국내 여론 모두에게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