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방부, 주한미군 감축 논의…김정은 '협상 카드'로 검토트럼프, 백악관 복귀 후 대북관계 재정립 의사 수차례 드러내북한도 수차례 미사일 발사로 존재감 과시하며 미국에 시그널주한미군 감축, '韓 패싱' 우려에 핵 방어도 부정적…'우크라 꼴' 날 수도
  •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좌)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만난 모습. 190630 ⓒ뉴시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좌)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만난 모습. 190630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주한미군 일부 철수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다음 '협상대상'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면담을 염두에 둔 일종의 준비작업으로 풀이된다.

    특히 과거에도 '거래의 기술'을 앞세워 북미 정상 간 이벤트를 연출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율 반등을 위해 다시 한반도 카드를 꺼내든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리틀 로켓맨(litter rocket man)' 김정은 위원장 역시 최근 한국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전처럼 대남(對南) 무력 도발에 열을 올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 만남이 머지않아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3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수천명을 한국에서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현재 한국에 주둔한 미군 약 2만8500명 가운데 4500명가량을 미국 영토인 괌을 비롯해 인도-태평양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로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가 논의될 수 있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됐으나, 행정부에서 구체적인 계획이 검토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1기 시절에도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참모들의 반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꾸준히 드러내고 있었던 만큼 향후 북한에 제시할 협상 카드 중 하나로 주한미군 감축이 논의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미국 국방당국자는 이 같은 구상이 대북(對北)정책에 대한 비공식 검토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고려를 위해 준비되고 있다고 WSJ에 전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의 보도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그의 국가안보팀은 그러한 시나리오에 대비해 물밑에서 준비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한 전직 미국 고위 관리는 행정부 관계자들이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화려하게 꾸민 편지 한 통(one flowery letter)"만 받아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되면 경주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초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루 여 선임연구원은 싱크탱크 전문가들과 전·현직 미국 관리들이 참여하는 "비공개 논의"는 "트럼프 행정부가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백악관 복귀 이후 틈날 때마다 "난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거나 김정은 위원장에게 연락할 계획이 있다면서 북한과의 관계 재구축 의사를 적극 나타내고 있다.

    3월 말에는 '김 위원장에게 연락(reach out)할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다"면서 "난 어느 시점에 무엇인가를 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북한을 여러 차례 '핵보유국'으로 칭하면서 북한의 핵 보유를 현실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북한에 '호의'를 보였다.

    그는 1월20일 취임식 직후 "김정은은 이제 핵 능력(nuclear power)을 가졌다"고 말한 데 이어 3월13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사무총장과의 회담에서는 김정은이 '핵 파워(nuclear power)'인 것은 분명하다"고 했으며 31일에는 "김정은은 매우 큰 핵 국가(big nuclear nation)"라고 강조했다.

    '뉴클리어 파워'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규정한 '핵보유국(nuclear weapon state)'과는 다르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한의 핵 보유 현실을 일관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이를 전제로 북한과의 협상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점차 굳어지고 있다.

    이는 집권 1기 때와 달리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 보유를 인정한 상황에서 핵 능력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핵 군축을 의제로 한 협상을 시사한 것인 만큼 북한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 ▲ 한·미 연합 도하훈련.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 한·미 연합 도하훈련.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북한도 22일 동해상에서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올 들어 다섯 번째 미사일 발사를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올 들어 북한은 △1월6일 중거리급 극초음속 탄도미사일(평양→동해상) △1월14일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자강도→동해상) △3월10일 근거리 탄도미사일(CRBM, 황주→서해상) △5월8일 SRBM(원산→동해상) 등을 발사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은 보란 듯이 핵무기연구소를 찾고, 핵추진잠수함 건조현장을 공개하는 등 핵무력 강화방침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라는 말은 "시대착오적 집념"이라며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는 앉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는 최근 5000t급 신형 구축함 진수식 연설에서 한·미의 적대적 군사행동에 대응해 해군의 활동수역을 영해가 아닌 '원양'으로 넓히겠다면서 "세계의 모든 수역으로 진출해 적수국들의 침략을 견제하고 선제 또는 최후의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건설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한·미 때문에 핵무력을 강화한다는 주장은 기존의 북한 입장과 다르지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속해서 북·미 대화 의지를 나타내는 상황인 만큼 이러한 모습은 오히려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위협 수위를 높여가는 것으로도 보인다.

    대화가 늦어질수록 핵무력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미국이 받겠다는 '시그널'을 보내라는 압박인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해당 연설에서 거론한 △한·미 연합연습 △미국의 전략자원 한반도 전개 △새 전지 작전계획 수립 등이 그 조건일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너무 늦어지지만 않는다면 북핵 문제가 미국 외교의 후순위로 밀린 현재 상황의 '핵 능력'을 강화할 시간을 번다는 측면에서 나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국이다. 아직은 북·미 대화 재개를 준비하기 위한 '초기 물밑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등 국내 상황은 물론, 일단락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합의점을 도출하기 전인 우크라이나전쟁, 중국과의 무역전쟁, 이란과의 핵 협상 등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 상황도 그 못지않다. 게다가 이를 빌미로 또다시 '한국 패싱'이 이뤄질 경우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향할 가능성을 방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질 것이 자명하다.

    무엇보다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화할 경우 한·미 연합 방위태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주한미군 일부를 괌 등으로 이동 배치한다면 이는 중국을 더욱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공격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북한에는 잘못된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러시아 파병 이후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핵·미사일 전력은 물론, 재래식 전술 수준도 빠른 속도로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한미군 감축을 한·미동맹 약화로 오판할 경우 도발 정도가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주한미군 감축은 한·미 연합방위력과 상징적 차원의 대북 억제력 손실을 일으킬 수 있다"며 "북한이 한·미동맹의 결속이 약화했다고 오판할 수 있는 신호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수준이 크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사무엘 파파로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도 최근 주한미군이 철수 또는 감축될 경우 "그(김정은 위원장)가 침공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동맹국을 크게 우대하지 않고 독재자들에게 우호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이 향후 북·미협상에서 한국을 곤경에 처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전쟁 종식을 추진하면서 우크라이나에 거의 일방적 양보를 압박하고 있다. 백악관 회담에서 공개적으로 반감을 표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군사 및 정보지원을 중단하자 고개를 숙이고 내주다시피 광물협정까지 체결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2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대담에서 우크라이나 상황과 관련, "한국인들이 이를 보면 한국을 협상에서 배제하고 (북한과) 대화할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고 궁금해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이 그에 대해 불안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