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교역국 대상 관세전쟁 개시美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내년 전망도 '뚝'소비자물가 상승-소비심리지수 하락 등 경기침체 '뚜렷''직격탄' 기업 CEO들도 '트럼프 관세' 성토…"변동성만 높여"트럼프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도 "침체 우려 없어, 호황세 기대"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레오 바라드카 아일랜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시작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50312 AP/뉴시스.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레오 바라드카 아일랜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시작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50312 AP/뉴시스. ⓒ뉴시스
    "Tariff is the most beautiful word in the dictionary(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며 관세를 칭송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언대로 임기 첫 두달간 전세계를 상대로 대대적인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오랜 우방인 멕시코·캐나다는 물론, 거대 경제권인 중국과 유럽연합(EU)을 상대로 때로는 협상 도구로, 때로는 목적 그 자체로 압박하기도, 또 유화책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글로벌 무역질서를 뒤흔드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국민에게도 후폭풍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가계에는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기업들은 판매 부진으로 실적이 악화하고 신규 투자가 제한되는 등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었다.

    경기 불안정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귀를 닫고 있다. 그에겐 여전히 아름다운 단어인 것으로 보인다.

    18일(현지시각)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1%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종전 전망치를 제시한 지 불과 석달 만의 수정이다. 트럼프 관세에 따른 글로벌 무역전쟁 리스크를 고려한 조치다.

    지난해 미국 경제가 2.8%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1%대 성장 전망은 미국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도 1.7%에서 1.5%로 낮췄다.

    피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글로벌 무역전쟁이 미국과 세계의 성장세를 둔화시키고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승,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금리인하 지연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관세로 무역전쟁이 격화하는 등 더 큰 관세 충격이 발생할 위험이 있고, 그에 따른 보복은 미국 수출업체에 타격이 줄 것이라고 피치는 예상했다.

    그러면서 "관세 인상은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 실질임금 감소, 기업 비용증가로 이어지고 정책 불확실성의 급증은 기업 투자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관세와 그로 인한 시장 변동성은 실제 미국 소비자들의 심리 악화와 지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17일 미국 상무부는 미국의 2월 소매판매가 7227억달러로, 전월대비 0.2%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월대비 0.6% 증가를 예상한 다우존스 집계 전문가 전망을 크게 밑돈 수치다.

    2월 지표는 1월 지표가 급격히 감소하고 최근 두달새 소비심리지표가 급속히 악화하면서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가운데 나왔다.

    전문가들은 앞선 1월 소매판매가 한파 등 일시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2월 들어서는 지표가 크게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1월 지표가 기존에 파악된 것보다 더 나빴던 것으로 조정된 데다 2월 소매판매가 기대에 못 미치는 혼합된 결과를 나타내면서 미국의 소비둔화에 대한 우려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월간 소매판매지표는 전체 소비 중 상품판매실적을 주로 집계하는 속보치 통계로, 미국 경제의 중추인 소비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여겨진다.

    이에 앞서 14일 발표된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3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2022년 11월 이후 2년 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서카나의 최고 소매 분석가 마셜 코헨은 "소비자는 너무나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압박받고 있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냥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보면서 버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이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소비 지출은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회복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는 유럽이나 기타 주요 경제권보다 빠른 속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후 고인플레이션 시기로 접어들면서 가계예산이 압박을 받았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여 소비재기업들의 판매량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저소득층 소비자들이 가장 큰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241014 AP/뉴시스.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241014 AP/뉴시스. ⓒ뉴시스
    비단 일반 소비자들에게만 피해가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소비자들이 얻어맞은 것이 유탄이라면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당장 정부 기조 여파로 뉴욕증시는 맥을 못추고 있다. 최근 3주간 미국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0% 이상 급락하면서 시장가치로 5조달러(약 7259조원) 이상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증시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감세와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기대감 속에 랠리를 펼쳤지만, 최근 전방위적인 관세정책에 따른 불확실성과 침체 우려가 두드러지며 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유명 CEO들은 트럼프 관세가 결국 갈등과 시장 변동성만 부추기고 있다고 잇달아 성토하고 있다.

    12~1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비즈니스 콘퍼런스에서 브리지워터의 설립자 레이 달리오는 "관세를 둘러싼 국가간 싸움이 사실상 전쟁에 해당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꼭 군대가 충돌해야만 전쟁이 아니다. 관세도 총칼을 쓰지 않을 뿐 전쟁과 같다. 전쟁의 결과는 불신만 낳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세일즈포스의 CEO 마크 베니오프는 "관세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핀포인트 형식으로 부과해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무차별 관세 폭탄을 퍼붓고 있어 시장의 변동성만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자리매김한 일론 머스크가 CEO로 있는 테슬라의 경우 아예 미국 무역대표부(USTR)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에게 서한을 보내 무차별적 관세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는 그리어 대표에서 서한을 통해 공정무역을 "지지"하지만, "다른 국가가 미국의 무역조치에 대응할 때 전기차업체 같은 미국 수출업체가 불균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폭스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240221 AP/뉴시스.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폭스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240221 AP/뉴시스. ⓒ뉴시스
    상황이 이렇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 성인 2137명을 상대로 이달 8일부터 12일까지 진행한 해리스폴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72%가 관세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다.

    앞서 해리스폴의 1월 중순 여론조사에서는 관세를 우려한다는 응답은 61%였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관세에 대한 우려 여론이 약 9%P 증가한 것이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NBC 방송이 여론조사기관 하트리서치와 퍼블릭오피니언스트레티지스에 의뢰해 7일부터 11일까지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오차범위 ±3.1%P)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44%로 과반에 못 미쳤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4%였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발(發) 관세전쟁' 등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 속에 일각에서 제기되는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전혀 예상하지 않는다"며 "이 나라는 호황세를 보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미국 증시가 연일 하락한 상황에 대해서는 "시장은 좋았다 나빴다 하겠지만, 우리는 나라를 재건해야 한다"면서 최근의 주식 매도세 확대는 자신은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전임자인 조 바이든 전 대통령으로부터 인플레이션 등 "끔찍한" 경제 상황을 물려받았다면서 자신이 경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날 열린 미국 주요 CEO들의 정례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관세정책을 발표한 뒤로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등 대미 투자를 늘리고 있다면서 "그들은 25%든 어떤 관세가 되든 내고 싶지 않아 한다"고 밝혔다.

    이어 "관세는 (25%보다) 더 높을 수도 있다. 높을수록 기업들이 (미국에) 건설할 것인데 궁극적으로 가장 큰 성과(win)는 관세가 아니다. 관세도 큰 성과고 많은 돈이지만, 가장 큰 성과는 만약 그들이 우리나라로 오게 되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은 관세 자체보다 큰 성과"라고 자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절부터 80여년간 힘겹게 구축한 글로벌 통상 시스템을 아무렇지 않게 휘젓고 있다. 동맹도, 우방도 없다.

    심지어 자신의 경제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경기침체는 가치가 있고, 과도기라고 평가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평가는 갈리겠지만, 분명한 것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는 것은 자국민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