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스' 삼매경 빠진 마성의 천재 뮤지션모친 별세로 '각성', 6개월 만에 앨범 제작작사·작곡·편곡·믹싱에 무대연출까지 만능내달 EP 내고 해외 투어, 대만서 단독공연
  • ▲ 카코포니의 공연 장면. ⓒ비크
    ▲ 카코포니의 공연 장면. ⓒ비크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가수 '카코포니(Cacophony)'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아닌가 싶다. 사실 가수라는 범주로 묶어 두기엔 그의 활동폭이 지나치게 넓다.

    음악감독이자 공연연출가, 앨범프로듀서, 그리고 폴댄서의 영역까지 넘보는 그는 '팔방미인'이라는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로 재능이 많다.  

    직접 영상이나 공연을 연출하며 자신이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가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과와 불어불문학과를 복수전공한 그는 한때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을 준비하던 촉망받는 재원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뒤늦게 가요계에 뛰어든 카코포니는 음악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6개월 만에 데뷔 앨범을 손수 제작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1집 앨범 '화(和)'에 실린 '숨'은 2018년 유튜브 채널 'Reattothek'에서 '올해의 노래' 1위로 선정됐고,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으로부터 '올해의 앨범'에 선정됐다. 영미권 매체인 'HELLOKPOP'은 '베스트 일렉트로닉 앨범'으로 카코포니의 데뷔작을 꼽았다.

    2집 '몽(夢)'과 EP '리본(Reborn)'도 한국대중음악상 '팝 음반'에 노미네이트되고, 스포티파이 '힙스터 인디 커버아티스트'로 선정되는 등 국내외에서 극찬을 받았다.

    2023년 발매한 3집 '디퓩(DIPUC)'도 한국대중음악상 '팝 음반'과 온음 매거진 '올해의 팝 음반'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 ▲ 카코포니의 공연 장면. ⓒ비크
    ▲ 카코포니의 공연 장면. ⓒ비크
    신인 가수가 데뷔작부터 완성도 높은 앨범을 내리 발매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그는 작사·작곡·편곡은 물론 사운드엔지니어링과 앨범프로듀싱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가히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행보다. 놀라운 점은 카코포니가 대학교 밴드에서 잠시 보컬 활동을 한 것 외에는 데뷔전까지 음악과 거의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는 점이다.

    그저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이었던 그가 '각성'하게 된 건,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으면서부터다. 죽음을 앞둔 어머지를 지켜보며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그는 아무런 준비나 계획도 없이 무작정 '음악'을 시작했다.

    지식은 없었지만 본능이 그를 이끌었다. 인터넷에서 얻은 얕은 정보로 '뚝딱' 노래를 만들어 낸 카코포니는 음향감독 곽은정의 도움을 받아 불과 반년 만에 자작 앨범을 완성했다. 국내외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숨' '로제타' 같은 명곡이 그렇게 탄생했다.

    데뷔부터 '말도 안 되는' 행보로 가요계를 놀래킨 그는 또 다른 '걸작'을 준비 중이다. 내달 21일 'April party'를 앨범 타이틀로 하는 EP앨범을 내기로 한 것.

    발매 이후엔 일본과 대만에서 공연을 벌이며 활동폭을 해외로 넓힐 계획이다. 지금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카코포니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DM이 쇄도하고 있다. 전형적인 가수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의 K팝 스타가 발돋움하는 중이다.

    폴댄스 삼매경에 빠진 마성의 천재 뮤지션을 직접 만나 봤다.
  • ▲ '팔방미인' 뮤지션 카코포니. ⓒ비크
    ▲ '팔방미인' 뮤지션 카코포니. ⓒ비크
    Q. '카코포니(Cacophony)'라는 예명은 어떻게 짓게 됐나요?

    - 본명은 김민경인데요.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정말 많아요. 학교 다닐 때도 민경이라는 친구가 있었죠. 그래서 앨범을 낼 때 무조건 예명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카코포니(Cacophony)'라는 단어를 봤는데 뭔가 '필'이 팍 오는 거예요. 이게 '불협화음'이라는 뜻인데요. 얼핏보면 사람들의 삶이 조화롭게 보이지만, 타인과의 관계 혹은 내면에는 저마다 불협화음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그런 걸 숨기고 살잖아요. 조화로운 척 살고 있지만 사실은 조화롭지 않다는 이중성을 갖고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조화롭지 않음을 당당하게 얘기하면 누군가에겐 용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이름으로 그냥 해보고 싶었습니다.

    Q.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다가 갑자기 앨범을 내고 가수가 된 이유가 뭔가요?

    - 원래 엄마가 항암 치료를 받고 몸이 좋아지셨다가 다시 재발하면서 온 몸으로 암이 전이됐어요. 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서 제가 병원에서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죠. 아빠하고 오빠는 직장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제가 엄마 간병을 도맡게 됐어요. 제가 외무고시(현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공부를 시작한 지 1년이 돼 가는 시점이었죠. 그렇게 병원에서 공부와 간병을 병행하게 됐는데, 시험에 붙어야 한다는 강박과 엄마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겹치면서 정말 극한의 상황에 놓였어요.

    '죽음' 앞에 다다른 엄마를 바라보다가 문득 엄마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 보게 됐어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할까요. 사실 저는 엄마랑 엄청 살갑거나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엄마랑 대화도 많이 하고 엄마에 대해서 많은 걸 알게 됐죠. 엄마는 원래 돈이라는 가치가 중요한 사람이었고, 그걸 좇으면서 살았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그게 약간 무의미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자기가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 순간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전교 1등도 하고, 연세대도 가고, 거기에서 학점도 따고, 온갖 자격증을 따고, 이제는 뭔가 공부의 '끝판왕' 같은 고시까지 준비하고 있는 제 삶이 엄마의 삶과 너무 겹쳐 보이는 거예요. 갑자기 이거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험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제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나도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거라고 믿어 온 거죠. 이 가치가 뭔지도 모르고 내가 원하는 가치도 아닌데, 그냥 맹목적으로 여기에 몰두하면서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정작 내가 원했던 것들을 잃고 있는 그런 느낌….

    Q. 인생의 목표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느낌이었겠네요.

    - 저도 모르게 '명예욕'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온갖 학점과 스펙들을 다 따려고 노력했고,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그냥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진짜 열심히 사는 학생이었어요. 그것도 좀 과도하게 하는 편이었죠. 그런데 엄마를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 음악해야 될 거 같다'고 엄마한테 말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그러라고 했어요. 신기하죠? 그렇게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아무런 계획이 없었죠. 일주일에 한 번 간병인이 오시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 혼자 인터넷과 유튜브를 뒤져가며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이것저것 깔아 보고 고심하던 게 2018년 3월이었는데 그 다음 달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발인 끝나고, 그냥 집에 와서 일주일 동안 방 안에 콕 박혀서 계속 컴퓨터만 했어요. 사실 그때 1집에 실린 곡들이 다 나왔어요.
  • ▲ '팔방미인' 뮤지션 카코포니. ⓒ비크
    ▲ '팔방미인' 뮤지션 카코포니. ⓒ비크
    Q. 일주일 만에 곡을 다 쓰셨다고요?

    - 말도 안 되죠? 지금 생각하면 완성된 곡이라기보다는, 조악한 형태의 어떤 '무언가'였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에게 얼마간의 돈을 좀 주셨는데요. 도저히 이 돈을 저를 위해 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이 돈을 엄마를 위해 쓰자고 마음먹었죠. 엄마를 위하는 앨범을 만들자고 결심한 뒤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고, 그렇게 노래가 뚝딱 나왔어요. 그때만 해도 제가 음악가로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나에게 엄마가 준 돈이 있으니 그 돈으로 엄마를 위한 노래를 만든 거죠.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도 몰랐어요.

    이게 슬픔인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휘몰아쳐서 무언가를 만들었죠. 그리고 대학교에서 만났던, 학교에서 피아노 치던 분에게 연락해서 뭔가를 좀 덧 대고…. 그런 다음에 앨범을 완성하려면 녹음도 하고 믹싱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앨범에 적혀 있던 엔지니어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냈어요. 곽은정 감독님이라고, 선우정아나 혁오 등 유명 뮤지션들의 앨범에 음향 엔지니어로 참여하신 분이에요. 이름을 검색했더니 블로그가 나와서 거기에 적힌 이메일 주소로 작업한 것들을 보냈죠.

    Q. 그랬더니 반응이 오던가요?

    - 한 번 와 보라고 하셔서 계신 곳으로 찾아갔죠. 그때 절 보고 '너 천재네' 이러시는 거예요. 다행히 제가 만든 노래들을 좋게 봐주셔서 믹스 작업을 해주셨고, 알고 계신 마스터링 엔지니어분까지 소개해 주셔서 앨범이 나오게 됐어요. 마침 유통 쪽에 있는 친구가 있어서 도움을 받기도 했죠. 정말 너무 말이 안 되게 모든 일이 착착 이뤄졌어요. 조악한 제 데모를 듣고, 감정 속에서 나온, 진실된 무언가가 사람들을 움직였던 것 같아요. 4월부터 진행한 앨범 작업이 6개월 만에 모두 끝났고, 엄마 생일 날(10월 4일) 앨범을 발매했어요. 정말 별 생각도 없이 음반을 냈는데, 먼저 평단에서 좋은 반응이 나왔고, 해외 쪽에서도 막 호평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게 진짜 말도 안 되지 않나요?

    Q. 정말 말도 안 되네요.

    -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제 음악에 대한 평을 해주시고, 해외 유튜브 채널에서도 언급됐어요. 말이 안 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이러면 음악을 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실 그때 당시에는 프로그램만 할 줄 알았지 사운드는 정말 몰랐거든요. 그래서 마스터링을 해주신 분에게 사운드 레슨을 받으면서 공부를 계속 했죠. 다행히도 제가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엄청 좋아해서 음악 작업을 빨리 배울 수 있었어요. 그렇게 음악적인 스킬들을 하나씩 늘려나갔고, 지금은 제가 녹음이나 믹싱까지 다 하고 있어요.
  • ▲ 카코포니 3집 '디퓩(DIPUC)' 자켓 사진. ⓒ비크
    ▲ 카코포니 3집 '디퓩(DIPUC)' 자켓 사진. ⓒ비크
    Q. 그야말로 우연한 계기로 가수가 탄생했군요. 1집 '화(和)'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면, 2집 '몽(夢)'과 3집 '디퓩(DIPUC)'의 아이디어와 콘셉트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요?

    - 제가 이십몇 년을 살았는데, 엄마의 죽음만 겪은 게 아니잖아요? 사실 어릴 때부터 억눌리고 쌓여왔던 일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러니까 어머니를 제외하고도 그냥 인생에서 힘든 일들이 되게 많았는데 이게 분출이 안 된 상태였던 거죠.

    Q. 말을 끊어서 죄송한데요. 제가 뵙기에는 아주 유복하게 잘 사셨을 것 같은데요. 아무런 걱정도 없이.

    - 그렇게 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참 다양한 불행들을 겪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집도 좀 잘 사는 것 같고, 공부도 잘 하고, 성격도 괜찮아 보이고, 그냥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무난하게 잘 사는 애처럼 보였을 거예요. 하지만 남모를 아픔이 저에게 있었다는 거죠. 음악을 하면서 제가 가졌던 아픔들을 돌아보게 됐고, 그걸 끄집어내 보자고 생각했어요. 사랑이라면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고, 좀 깊었던 관계들이 저한테 줬던 어떤 상처들이 있는데, 그 상처를 그냥 상처대로 두기는 싫었어요. 또 이별 그 자체로도 두기가 싫어서, 만약 평행세계가 있다면 우리가 헤어지지 않고 다시 만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봤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담는 것도 뭔가 새로운 위로의 방식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런 콘셉트로 2집을 만들었어요.

    Q. 3집 앨범명 '디퓩(DIPUC)'은 '연애의 신(神)'인 큐피드의 철자를 거꾸로 한 거죠?

    - 이전까지의 카코포니는 상처를 받는 입장이었거든요. '문소문'의 기타리스트 김일로(거누)와 합주를 하다가 문득 밝은 느낌의 가사와 멜로디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이번엔 정반대의 곡을 써보자고 생각했죠. 상처를 주는 입장이 돼서 노래하고 가사를 썼어요. 상대방을 유혹하고 지배하려는 일종의 사랑의 가해자 콘셉트인 거죠. 저는 이런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오르는 편이에요. 맨날 억눌려만 있다가 한 번 구멍이 터지니까, 안에 있던 게 계속 샘솟는 것 같아요. 앨범을 내면 낼수록 음향적인 디테일을 다루는 능력은 점점 발전하고 있는 것 같고요. 세 앨범 모두 딱 그 시기에 내야 될 앨범을 낸 것이라고 생각해요. 각각의 매력과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Q. 정규앨범 3장을 색깔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 1집 하면 노란색과 검은색이 떠올라요. 노란색이 뭔가 밝은 듯한데 저한테는 약간 우울감을 주는 것 같거든요. 엄마랑 이별을 해서 슬픈데, 한편으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고 더 사랑할 수 있게 됐다는…. 그런 의미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노란색이 생각나요. 검은색은 죽음을 상징하잖아요. 그래서 노란색과 검은색이 적절한 것 같아요. 2집의 경우는 연노랑이죠. 약간 연한 어떤 파스텔톤이 떠올라요. 뭔가 평행세계와 어울리는 것 같고, 모호하면서도 살짝 신비로운 느낌이 나죠. 3집 앨범 커버에는 제가 화살을 쏘는 장면을 넣었는데요. 흰색이나 약간 은빛색이 떠올라요. 조금 팝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지향해서인지 그런 느낌이 드네요.
  • ▲ 카코포니의 공연 장면. ⓒ비크
    ▲ 카코포니의 공연 장면. ⓒ비크
    Q. 2023년 11월 25일 3집 발매 기념 공연에서 '폴댄스'를 선보여 화제를 모은 적이 있죠? 3집에 실린 '당겨요, 바로 지금'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서도 폴댄스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일본의 아무로 나미에(あむろなみえ) 이후 이렇게 공연과 폴댄스를 완벽히 접목한 가수는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폴댄스는 2집 작업을 마치고 시작하게 됐어요. 작업실 앞에 폴댄스 학원이 있는데, 비주얼 작업을 해주셨던 분이 권해서 하게 됐죠. 원래 저는 여성적으로 보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서 보이시하게 그냥 편하게 입고 다니는 편이었는데요. 폴댄스를 추려면 옷을 좀 얇게 입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매일 제 몸을 거울로 보게 됐고, 여성적인 어떤 동작을 하는 과정에서 뭔가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내가 모종의 이유로 이런 것들을 일부러 막아 놓고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걸 분출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걸 파악하게 됐어요. 이런 감정을 음악가로서 가만히 둘 수가 없어 폴댄스 퍼포먼스를 선보이게 된 거죠.

    폴댄스 하면 안 좋은 이미지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또 그런 식으로 여성의 이미지가 소비되는 걸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여성으로서 제 몸이 좋고 예쁘고 아름다운데, 내가 이렇게 당당하고 자유로운데 이걸 표현하는 게 왜 비판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런 비판을 들어도 별 상관없다는, 어떤 당당함이 생겨서 실제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앨범 커버를 봤을 때 '야하다'는 반응을 보인 분들은 없었거든요. 당당함이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았고, 그렇게 소비가 돼서 좋았습니다.

    3집을 내고 쇼케이스 겸 콘서트를 하면서 폴댄스를 보여드렸는데요. 그걸 한 기자분이 기사화해주셨어요. 그때 그 기사에 '돈 벌려고 생쇼를 한다'는 악플이 달렸어요. 그런데 저는 하나도 상처가 안 되더라고요. 실제로 이런 걸 봐도 아무렇지 않은 저를 보면서 내가 정말로 준비가 됐고, 그걸 잘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재밌었어요. 이후로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요즘은 노출 있는 옷도 그냥 별 생각 없이 입어요. 여성들이 내 몸이 좋고 보여주고 싶다면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자기 몸이니까. 아티스트는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메시지를 작품으로 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떤 아이콘이나 자신의 캐릭터로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자유롭고 당당한 그런 이미지를 계속 보여드리고 싶어요.

    Q. 폴댄스의 장점을 꼽아본다면?

    - 2집을 낸 직후 뭔가 음악을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성과도 없는 것 같고…, 한마디로 성취감이 너무 없던 상태였어요. 또 앨범 발매 시기가 아니거나 공연을 안 하면 약간 처질 수밖에 없는데, 폴댄스는 동작 하나를 힘들게 성공할 때마다 엄청난 성취감이 있는 거예요. 저는 뭔가를 노력해서 결과를 얻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거든요.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상을 타고 자격증을 따고, 이런 것에 학습된 인간이다 보니, 그런 게 전무한 제 삶이 너무 힘들었던 거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경험해 온 '보상체계'와 폴댄스가 비슷해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되찾았어요. 원래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우울한 모드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밝아졌어요. 운동하니까 살도 빠지고 근육도 생기고, 더 건강해지고 당당해졌다고나 할까요.
  • ▲ '팔방미인' 뮤지션 카코포니. ⓒ비크
    ▲ '팔방미인' 뮤지션 카코포니. ⓒ비크
    Q. 개인 활동 외에 '문소문'이라는 밴드에서도 활동하시죠?

    - 저를 포함해 2인조 밴드예요. 기타를 치는 김일로(거누)와 함께하고 있죠. 원래는 홍대 공연장에서 그냥 한 번 인사만 나눴던 사이였어요. 제가 1집을 만들 때 기타가 필요한데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무턱대고 그 분에게 연락을 했죠. 알고보니 기타를 너무 잘 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인디신에서 유명한 '도마'라는 팀에서도 활동했고. 어느날 김일로가 꿈에서 어떤 기타 리프를 들었다면서 막 연주를 하는 거예요. 그때 제가 멜로디에 맞춰 즉흥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합이 너무 잘 맞았어요. 그래서 그냥 팀을 해 보자고 의기투합해 밴드를 결성하게 됐죠. 카코포니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문소문으로는 사회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요. 문소문 1집은 '마녀사냥'을 당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다음 앨범에선 인공지능(AI)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참고로 문소문은 어떤 소문을 전해 듣고 그걸 이야기로 노래한다는 뜻이에요. 당연히 제가 지었죠.

    Q. 내달 EP앨범(미니앨범)을 내고 해외 투어도 벌일 계획이라고요?

    - 4월 21일 발매할 계획이에요. 앨범 타이틀은 'April party'로 정했어요. 발매 후엔 일본과 대만에서 공연을 벌일 예정이에요. 공연 타이틀은 'After april party'예요. 대만에서는 단독 공연을 열기로 해서 기대가 커요. 전 세계 각지에서 각양각색의 팬들이 인스타그램 DM을 보내주시는데요. 상당수가 현업 뮤지션들이더라고요. 제 음악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는 분도 계시고, 여건이 되면 같이 음악을 해 보자는 제안도 들어오고요. 거꾸로 제가 DM을 보내 합동 공연 제안을 하기도 해요. 이번 투어에서도 제가 즉석으로 요청드린 연주자들과 함께할 계획이에요.
     
    Q. 앞으로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나요?

    - 제가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이 원하는 음악과의 교집합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어요. 저는 대중성과 진실성은 다른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대중성을 노려도 제 진실된 이야기가 담겨 있으면 된다고 봐요. 사실 음악의 형태가 장르도 변하고, 구성도 변하고, 맨날 변하고 있지만 '불협화음'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드린다는 메시지만큼은 잃지 않으려 합니다.
  • ▲ 카코포니의 공연 장면. ⓒ비크
    ▲ 카코포니의 공연 장면. ⓒ비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