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는 이슈로" 정우성 이어 李 반사이익탄핵 후 내년 4월 대선 열리면 이재명 면죄野 타임스케줄 말리면, 피의자가 나라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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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한강식 검사는 각종 악재가 터졌을 때 묵혀놨던 이슈들을 하나씩 공개하는 방법으로 대중의 시선을 돌리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의 귀재다. 겉으로는 굵직한 사건들을 연달아 터뜨리는 공정한 법의 심판자로 알려졌지만, 실제는 자기 맘대로 사건을 기획·재단하는 공권력의 실세.
"사건은 김치처럼 푹 익혀 뒀다가 정말 맛있을 때 꺼내 먹어야 한다"며 '국면 전환용'으로 보관 중인 사건 파일을 뒤적거리는 한 검사의 모습은, 'OOO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귀신 같이' 톱스타들의 스캔들이 불거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에 전 국민이 공황 상태에 빠진 모습이다. 난데없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는 경천동지할 사건들이 불과 사나흘 만에 벌어졌다. '더 킹'이 현실을 반영한 영화라면, 작금에 벌어진 초유의 사태는 허무맹랑한 영화를 베낀 현실처럼 보인다.
이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최대 이슈는 영화배우 정우성의 '혼외자 스캔들'이었다. 데뷔 이래 강직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구축해 온 톱스타가 남몰래 혼외자를 낳고, 동시다발적으로 뭇 여성들과 교제를 해 왔다는 '사실'과 '루머'가 불거지면서 매일 같이 정우성 개인을 물고 뜯고 씹는 '가십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속사를 통해 사과 입장을 밝혀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나와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지겠다"고 고개를 숙여도 정우성을 향한 비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3일 밤 이후 정우성 스캔들은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가 비상계엄 사태 아래로 묻혔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영화 속 대사가 현실로 이어진 것.
공교롭게도 '큰 사건'을 '더 큰 사건'으로 덮는 '한 검사'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정우성이다. "내가 역사야. 이 나라고"라고 외치는 한 검사의 완고한 모습이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국민의 손발을 묶는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정우성이 출연한 영화 '서울의 봄'이 재조명되면서, 영화 속에서 정의로운 수도경비사령관으로 분한 정우성의 이미지까지 개선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일개 배우의 치부를 가리는 '구원 투수'로 등판한 모양새가 된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항간에서는 대통령이 정우성의 '광팬'이라 이러한 폭탄 발언을 한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가 뭔지 모르겠으니 나오는 푸념이다.
대통령의 일탈 행동으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건 정우성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 '사법리스크'로 궁지에 몰렸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번 사건으로 단숨에 차기 대권주자 0순위가 됐다.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실시한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이재명을 지지한다'는 응답자가 과반을 넘긴 것. '8개 사건에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가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는 여론보다, '차라리 이재명이 낫다'는 여론이 앞서는 개탄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이변'을 두고 조응천 개혁신당 총괄특보단장은 "이재명 대표는 전생에 도대체 나라를 몇 번이나 구했냐"며 "갑자기 핵미사일이 날아오는 사태가 벌어지니, 지금까지의 전선도 무의미해지고 갑자기 고속도로가 뻥 뚫렸다"고 비유했다.
더욱 심각한 건 대통령이 '자멸'의 길을 택하면서, 이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국회 동의를 받아 '일반사면'으로 모든 재판을 무력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짠 '타임스케줄'대로 정국이 돌아가면 내년 4월 초 '조기 대선'이 치러져, 이 대표가 사법적 심판으로 피선거권이 상실되기 전에 '왕좌'에 오르는 참변이 일어날 수 있다.
여당이 탄핵에 반대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돌발적인 계엄 선포로 국민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긴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오는 건 당연지사. 다만 그 시기를 내년 5월 이후로 늦춰, 전과가 '4범'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피의자가 대통령이 되는 사태만은 막자는 논리다.
"이 대표가 계엄 사태에서도 속으로는 정치 계산기를 두드리며 국론 분열을 극대화하면서 웃고 있을 것"이라는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의 말이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로 핵심 사정기관의 지휘부 공백 사태를 일으키고, 국회 예산 심사권을 '보복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민주당의 '들보'가 가려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비록 계엄 선포는 지탄받아 마땅한 행위나, 국무위원과 국가기관장들을 상대로 한 '연쇄 탄핵 추진'으로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초유의 '예산 삭감 폭거'로 민생 치안 유지 등 국가 본질 기능마저 훼손한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강력 규탄한 대통령의 호소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게다가 은근슬쩍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는 외교 정책'을 대통령 탄핵 사유로 집어 넣은 민주당과 좌파 진영의 '꼼수'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통령의 '실수'로 민주당의 '패악질'이 가려져선 안 된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기 이전에 이미 국정은 마비되고 국민들의 한숨은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나라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도 계엄 사태를 기화로 뻔뻔스럽게 인과관계를 왜곡하는 민주당의 선전·선동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즐겨 썼던 영화 기법 중 '맥거핀 효과(MacGuffin Effect)'라는게 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와 전혀 상관이 없고, 관객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극적 장치를 일컫는다.
영화 '더 킹'에서 한 검사가 여론을 돌리기 위해 써 먹는 방법도 맥거핀 효과라 할 수 있다. 자극적인 이슈를 앞세워 정치적인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한 검사의 꼼수는 현실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맥거핀 효과에 속아 눈이 옆으로 돌아가는 국민들을 바라보며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을 한 검사가 떠오른다. 정치권 곳곳에 제2, 제3의 '한 검사'가 출몰하고, 여기에 여론이 흔들리는 영화 같은 현실이 통탄스러울 뿐이다.